“소개팅 거절조차 아깝다”…10분마다 자리 박차고 일어난 까닭 [Book]

인류는 오래전부터 미래를 알고 싶어 했다. 별의 운항에서 내일을 점치거나, 예언에 기대어 도래하지 않은 시간을 예측하려 했던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오늘날에도 이런 욕망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우리는 그걸 다른 말로 부른다. 바로 ‘트렌드’다. 트렌드를 안다는 건, 이제 시작된 변화가 미래엔 어떤 모습으로 우리 삶의 풍경을 바꿀지를 사전에 관측하려는 마음과 유관하다. 그래서 우리는 트렌드를 감지하고 이로써 앞날을 내다보려 한다.
신간 ‘트렌드 코리아 2027’이 출간됐다. 2008년 시작된 국내 대표 트렌드서 ‘트렌드 코리아’의 19번째 책이다. 올해의 첫 번째 키워드는 ‘권태사회’다. 즐길 거리가 이토록 넘쳐나는 세상에서, 이 책은 왜 하필 ‘권태’를 첫머리에 뒀을까.
이유는 이렇다. 책이 언급하는 권태는 이전의 권태와 좀 다르다. 예전엔 재미가 없는 지루함이었다면, 요즘은 자극이 너무 많아져서 권태롭다는 것. “뭐 재미있는 거 없어요?”란 질문이 흔한 인사말이 된 세상, ‘~태기’란 말은 유행어처럼 번진다. 옷이 가득한 옷장 앞에서 입을 게 없다고 느끼는 ‘옷태기’, 어제와 똑같은데 거울 속 내 모습이 못생겨 보이는 ‘얼태기’ 같은 말들 말이다.
그래서 책은 권태사회를 “여유를 느낄 수 없을 만큼 바쁘고, 재미있는 콘텐츠가 끊임없이 자극을 주는데도, 사람들이 오히려 혹은 여전히 더 권태를 느끼는 사회”로 정의내린다. 자극이 없어서가 자극이 지나치게 많아 그 무엇에도 충분히 머물지 못하기에 ‘권태롭다’고 느낀다는 것.
생각의 진공을 견디지 못하니 빈틈을 채우려 하는 일상이 특히 그렇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기까지의 몇 초, 생성형 AI가 답을 완성하기까지의 몇십 초를 우리는 견디지 못한다. ‘갓생’이란 신조어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된다. 완벽하게 업무를 수행하고, 자기계발에 매진하며, 건강관리까지 ‘단 하루 안에’ 해내는 삶이 이상적이란 통념은 ‘갓생의 인간’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권태사회에서 다른 시도들이 시작되고 있다고 책은 간파한다. 사람들이 지나친 자극으로부터 자신을 떼어내려는 것이다.
뉴욕 카페 그럼피는 ‘노 랩톱, 노 와이파이’ 정책을 고수하는데도 손님들이 붐비고, 워싱턴DC의 허시 하버에 입장하려면 ‘욘더 파우치’라고 불리는 작은 가방에 휴대전화를 넣어 봉인해야 한다. 서점에서도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도쿄 긴자의 모리오카 서점은 수만 권의 책이 꽂힌 서가 앞에서 어떤 책을 선택해야 할지를 모르는 이들을 위해 마련된 콘셉트로 외신의 주목을 받았다. 3평 남짓한 이 서점에선 단 한 권의 책만을 판다. ‘하나의 방, 한 권의 책’이 모리오카 서점의 모토다.
‘트렌드 코리아 2027’이 주목하는 내년의 또 다른 키워드는 ‘라이프 ROI(투자자본수익률)’다. 자산이 아니라 삶과 관계에서도 주판알을 튕기고 그게 안 될 것 같으면 ‘손절’하는 게 일상이란 의미다.
로테이션 소개팅이 대표적이다. 연애 상대를 찾기 위한 소개팅에서도 사람들은 불필요한 시간과 노력을 줄이려 한다. 참가자들이 10분마다 자리를 옮겨가며 상대를 바꾸고, 다 끝나면 마음에 드는 상대를 적어내 서로 일치하면 연락처를 주고받는 소개팅 말이다. 한 번의 만남을 위해 옷을 사고 외모를 꾸미는 과정에서도 이해타산을 따진다는 것.
특히 ‘방치형 게임’의 유행도 라이프 ROI의 한 단면이다. 접속하지 않아도 캐릭터가 알아서 성장하고 자원이 쌓이는 방치형 게임의 점유율은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 16%를 차지한다.
“지루한 과정은 기계에 맡기고 보상만 수확하는, 재미마저 ROI의 대상인” 세상이다. 내신이 5등급제로 바뀐 뒤 한 등급만 밀려도 수시 합격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2등급이 되는 순간 자퇴하고 검정고시나 이듬해 1학년으로 재입학하는 ‘내신 리셋’ 현상도 마찬가지다.
눈여겨볼 다른 키워드는 ‘저장인류’다. 사람들은 별다른 목적이 없는 상황에서도 일단 저장부터 한다. 휴대전화 카메라로 찍든, 스크린샷으로 캡처하든, 혹은 상사와의 대화를 녹음하거나 보디캠 혹은 스마트 글라스로 24시간을 녹화하든 모든 일상은 저장된다. 문자 그대로 ‘닥치고 저장’인 세상.
분명히 써먹지 못하겠지만 언젠가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 저장 버튼을 누르지만, 그걸 저장했다는 사실까지도 잊어버린다. 아이폰17 프로맥스 모델은 내장 메모리 옵션 중 하나가 2다. 1994년 최초의 휴대전화 내장 메모리가 1였던 것에 비하면 200만배 차이다.
책은 ‘폼팩터 시프트’ ‘해봄경제’ ‘바이브 워킹’ ‘리:텐션 전략’ ‘휴먼엣지’ ‘하프시그널’ ‘안목자본’ 등 총 10개의 키워드로 2027년 트렌드를 내다본다. 미래는 어느 날 도착하는 게 아니라, 이미 우리 눈앞에서 형태를 갖춰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김난도 외 지음, 미래의창 펴냄
애플
AAPL
Apple Inc. NASDAQ
애플의 아이폰17프로맥스는 2TB 내장 메모리 옵션으로 저장인류 흐름의 사례로 언급됐습니다.
일상 기록을 축적하는 소비 행태가 부각되며 스마트폰의 고용량 저장 공간이 제품 선택 요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고용량 옵션이 실제 이용 수요와 기기 교체 판단에 미치는 영향은 시장의 관전 포인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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