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미국 압박 거세도 국익 훼손하는 호르무즈 파병 결정 안돼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 4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프랑스 국빈 방문 관련 일정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4일 호르무즈 해협 파병 문제와 관련해 “호르무즈에서 실질적 기여를 하려면 한반도 대비 태세를 고려해야 하며, 그 대비 태세에 관해 여러 가지 검토를 하고 있다”며 “한반도 대비 태세에 큰 손상이 있지 않은 범위 내에서는 운신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군사적 기여도 다양한 방식이 있다. 전투에 참여하는 것도 있고 비전투도 있다.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국내법적 절차에 따라서도 고려를 하고 있다”면서 “국회와의 협의, 국회의 동의를 의미하는 것인데, 아직 그 단계까지 가 있지는 않다”고 덧붙였다. 국회 비준동의를 거쳐 호르무즈 해협에 전투자산을 파병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동안 청와대는 호르무즈 해협의 항행 자유를 위한 기여 방안과 관련해 “다양한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여왔다. 그러다 지난달 2일 “우리가 할 수 있는 실질적인 군사적 기여 방안에 대해서 검토를 해 왔다”며 처음으로 ‘군사적 기여 방안’을 언급하더니 이날 한 걸음 더 나아가 전투자산 파병 가능성까지 열어둔 것이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거듭된 파병 압박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이란 비핵화 노력에 동참할 의향을 물었으나 한국 측이 “사양하겠다”고 답했다며 여러 차례 노골적 불만을 표시했다. 정부로선 이 문제가 미국과의 통상·안보 협상과 대북 공조에 미칠 부정적 여파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이날 한·미 안보 협상과 관련해 “지금 진행되기 쉽지 않은 상태”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과 이란의 군사적 충돌이 재개된 지금 시점에 호르무즈 해협에 군을 보내는 건 미국이 좀처럼 헤어나오지 못하는 대이란 전쟁의 수렁에 한국도 끌려들어가는 꼴이 된다. 전투 자산은 말할 것도 없고 해상초계기, 폭발물처리반, 군수지원함 등 비전투 전력이라도 이란의 공격을 받는 일이 생기면 한국은 졸지에 전쟁 당사국이 될 수 있다. 수입 원유의 70%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들어오는데, 이 해협에 대해 군사적 영량력을 행사 중인 이란과의 관계 악화는 장기적으로 원유 수급 불안정성만 키우기 십상이다. 호르무즈 파병은 동맹인 한·미의 이익 균형을 여러모로 심각하게 훼손할 우려가 크다. 미국이 시작한 이 명분없는 전쟁에 군대를 보내는 건 “대한민국은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는 헌법에도 반한다.
미국의 압력이 아무리 거세더라도 호르무즈 해협의 항행 자유를 위한 한국의 기여는 비군사적 분야에 국한해야 마땅하다. 정부는 전투·비전투 분야를 막론하고 호르무즈 해협 파병을 결정해선 안 되며, 여야도 보편적 가치와 국민의 생명, 장기적 국익이 걸린 이 문제에 관한 한 정부에 ‘파병 불가’ 입장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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