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분과 9일의 차이…빙하 붕괴 조기 경보, 할 수 있다 [왜냐면]

광고

이원상 | 극지연구소 빙하지권연구본부 책임연구원
지난달 26일 아침 히말라야에서 산이 무너졌다. 해발 5200m 부근 빙하의 말단부가 그 아래 암반과 함께 떨어져 나왔다. 무너진 얼음과 바위는 1200m를 떨어진 뒤 협곡을 따라 가속해, 3000m 넘게 아래에 있는 국경으로 쏟아져 내렸다. 쏟아진 더미가 계곡을 잠시 막았다. 국경 마을까지 걸린 시간은 단 7분이었다. 마을과 다리와 발전소 공사 현장이 한꺼번에 쓸려 내려갔다. 수습된 사람보다 아직 찾지 못한 사람이 몇배 많다. 그 안에 한국인도 있다.
7분 동안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7분은 경보를 울릴 시간도, 멀리 피신할 시간도 되지 못한다. 그래서 이 재난을 두고 대피가 늦었다고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개입할 수 있었던 지점은 그날 아침이 아니라 그 이전, 산이 위험해지고 있다는 것을 아는 시간에 있었다.
광고
기후변화가 이번 붕괴를 일으켰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전문가들도 대체로 그렇게 말한다. 다만 온난화가 산비탈을 지탱하던 얼음을 줄이고 얼고 녹는 주기를 바꾸면서 산의 체력을 깎아내리고 있다는 점은 폭넓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렇게 되면 무너지는 데 필요한 조건들이 점점 줄어든다. 이번에도 결정적 계기라 할 만한 것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그날 내린 비는 24시간 동안 7㎜에 못 미쳤다. 몬순 한복판에 그 정도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사실 이 강에서 일어난 재난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지난해 7월에도 같은 자리가 한번 쓸려나갔다. 티베트 쪽 빙하 위에 새로 생긴 호수가 몇달 만에 크게 자라 터졌고, 네팔-중국 두 나라를 잇던 다리가 사라졌다. 그때는 물이 터진 것이었고 이번에는 얼음이 붙잡고 있던 암반이 무너진 것이니 원인이 서로 다르다. 서로 다른 두가지 이유로 같은 구간이 1년여 만에 두번 쓸려나간 셈이다. 통계보다 이 사실이 더 무겁게 다가온다.
광고
광고
지난해 스위스 블라텐에서도 산이 무너졌다. 마을의 90%가 매몰되었지만 주민 300여명은 붕괴 9일 전에 이미 떠난 뒤였다. 그 9일은 어디서 왔을까.
빙하 위 암벽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한 것을 누군가 이상 신호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평소와 다르다’를 알려면 ‘평소’를 알아야 한다. 스위스는 1880년대부터 알프스의 빙하를 관측해 왔다. 9일은 9일치 관측이 만든 시간이 아니라 100년이 넘는 자료의 축적에서 나온 시간이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
광고
네팔이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2016년 에베레스트 남쪽 임자호수에는 인공 배수로를 내어 수위를 낮추고 하류 50㎞ 구간에 경보장치를 설치했다. 다만 그것은 빙하호가 넘칠 것을 상정한 대비였다. 이번에 무너진 것은 빙하호가 아니라 산이었고, 장소도 달랐다. 그렇다고 아무도 몰랐던 재난인 것은 아니다. 얼음과 바위가 함께 무너져 토석류로 바뀌는 이 유형은 이미 이름이 있고 국제 평가 지침도 나와 있다. 몰랐던 재난이 아니라 목록의 아래쪽에 있던 재난이다. 우리는 대비할 것을 고를 수밖에 없고 대개 최근에 겪은 것부터 우선순위에 올려둔다. 중요도를 결정하는 방법은 계속 보고 있는 것 말고는 마땅한 대안이 없다.
그러면 이번에 그 산은 왜 아무도 보고 있지 않았을까. 장비가 없어서가 아니다. 네팔은 지진계 40여대와 지각 변형을 재는 위성항법 관측점 50여곳을 운영한다. 다만 어느 관측망이든 이미 알고 있는 곳을 지켜볼 때 가장 잘 작동하는데, 그 비탈은 알고 있는 곳이 아니었다. 무너진 5200m 지점의 강수는 애초에 재는 곳이 없었고, 빙하호 조기 경보장치는 히말라야 전역을 통틀어 몇곳에 지나지 않으며 국경을 넘어 작동하는 것은 없다. 사람이 살지 않는 높은 곳이라 그동안 무엇을 왜 재야 하는지가 정해지지 않았던 자리다.
강단에 서다 보면 학생들에게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위기인 것은 알겠는데 무엇을 해야 바뀌느냐고, 해도 안 되니 좌절감만 쌓인다고 한다. 이해한다. 기후변화 대응을 온도 상승을 막느냐 못 막느냐의 관점으로만 바라보면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질문을 조금 바꿔볼 수는 있다. 막을 수 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미리 알 수 있느냐다.
이번 붕괴의 유형은 알려져 있었고 이 유역도 여러차례 조사된 적이 있다. 다만 그 조사들의 초점은 빙하호였고, 그 비탈이 상시로 지켜보는 대상은 아니었다. 온실가스 감축은 장기전이며 반드시 계속해야 한다. 다만 빙하 붕괴 같은 돌발 재해는 지금 당장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다. 여기서 피해 규모를 가르는 것은 예측이고, 예측은 관측에서 나온다.
광고
재난 대비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센서와 경보와 대피 훈련을 떠올린다. 모두 필요한 것들이다. 다만 그 체계는 하나의 숫자를 기반으로 설정된다. 어느 값을 넘으면 경보를 울릴 것인가 하는 기준값이다. 그 숫자는 장비를 사면 자동적으로 딸려 오지 않는다. 아무 일도 없던 시절을 오래 지켜본 기록에서 나온다.
네팔에서는 경보를 듣고도 믿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 비가 오지 않는데 홍수가 난다는 말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이다. 재난 연구자들은 이것을 상상력의 간극이라고 부른다. 원인이 눈에 보이지 않거나 너무 멀리 있으면, 경고는 들려도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극지 이야기를 할 때 늘 부딪히는 것도 같은 벽이다. 남극과 북극이 저렇게 먼데 우리와 무슨 상관이냐고 묻는다. 그러나 온도 상승은 지구의 얼음에 차별 없이 영향을 미친다. 그 결과 고산의 산비탈은 무너지기 쉬워졌고, 극지의 얼음은 녹아 전세계 해수면을 끌어올리고 있다. 형태가 다를 뿐 뿌리는 같다. 올해 초 남극에서 빙붕 아래 바닷물의 온도를 잴 기회가 있었는데, 얼음 바닥에 닿은 물이 영상 1도가 넘었다. 하지만 그 한번으로 알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평소인지 아닌지 구분하려면 여러해의 기록이 있어야 한다.
관측은 한번 끊기면 처음부터 다시다. 비어 있는 시간은 나중에 채울 수 없다. 인공지능도 자료에서 배우는 것이지, 없던 자료를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관측되지 않은 시간을 그럴듯하게 메울 수는 있어도 그것은 추정이지 사실이 아니다.
이번에도 신호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무너지는 순간, 산은 지진파를 내보냈고 그 진동은 여러 나라의 지진계에 기록되었다. 다만 그것은 처음에 지진으로 판독되었다. 미국 지질조사국도 지진으로 보고했다가, 파형을 다시 면밀히 살펴본 뒤에야 산이 무너지며 낸 산사태 신호로 바로잡았다. 흔들림을 느끼는 것과 그 흔들림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것은 다른 일이고, 후자가 훨씬 어렵다. 그날 아침 대피 문자는 68만건에 이르렀지만, 그 경보의 출발점은 관측 자료가 아니라 전화였다. 산이 무너지고 19분이 지나서야 사람이 본 것을 군 행정실에 알렸고, 재난 문자가 전파된 것은 38분이 지나서였다. 산에서 무언가 크게 무너졌다는 것만이라도 곧바로 하류에 전달할 수 있었다면, 그 시간의 일부는 되찾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지난달 28일 상류에서 두번째 붕괴가 있었다. 쏟아진 흙과 바위가 강을 막아 생긴 호수가 터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양국이 그 호수의 물이 얼마나 불어나는지 측정하고 있었고, 하류 주민은 이미 대피한 뒤였으며, 구조대도 미리 물러나 있었다. 첫번째 파도는 7분을 주었고, 두번째 파도는 하루가 넘는 시간을 주었다. 차이점은 그 자리에 위험이 있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느냐였다.
빙하가 무너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산이 위험해지고 있다는 것을 미리 아는 일은 시도해볼 수 있다. 이번에 터진 것은 빙하호가 아니라 산이었다. 지금 네팔 상류에서 사람들이 지켜보는 것도 호수라기보다, 무너진 흙과 바위가 강을 막아 생긴 자리와 그 위의 비탈이다. 그 숫자를 읽는 사람이 있어서, 아랫마을 사람들이 오늘 밤은 다른 곳에서 잠들 수 있다.
KioskNews shows a cleaned-up reading view extracted from the publisher’s page — the original always lives on their site, not ou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