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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October 24, 2026

산재로 양손 잃고 독학사 수석 뒤…‘조선 운영 매뉴얼’ 16년 만에 완역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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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욱 은대학당 명예교수가 지난 10일 강원도 원주시에 있는 은대학당에서 한겨레와 인터뷰 중 최근 펴낸 ‘교점역주 은대편고’와 ‘은대편고 어휘사전’을 책상에 올려두고 활짝 웃고 있다. 이승배 기자 photolee@hani.co.kr
이강욱 은대학당 명예교수가 지난 10일 강원도 원주시에 있는 은대학당에서 한겨레와 인터뷰 중 최근 펴낸 ‘교점역주 은대편고’와 ‘은대편고 어휘사전’을 책상에 올려두고 활짝 웃고 있다. 이승배 기자 photo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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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왕명 출납을 맡았던 승정원의 업무 규정과 관행을 담은 문헌 세 종이 모두 우리말로 번역됐다. 이강욱(66) 은대학당 명예교수(이하 호칭 생략)가 `은대조례'(2012, 한국고전번역원)와 `교점역해 정원고사'(2017,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에 이어, 8년 동안의 작업 끝에 지난달 `교점역주 은대편고'(태학사)를 펴내면서다.

은대는 승정원의 별칭으로, 오늘날로 치면 대통령 비서실 격이다. 교점(校點)은 여러 이본을 비교해 차이를 바로잡고, 붙여 쓴 한문에 표점과 띄어쓰기를 더해 읽기 쉽게 정리하는 작업이다. 역주(譯註)는 여기에 번역과 주석을 더한 것이다.

승정원일기는 왕명 출납을 관장한 승정원에서 날마다 취급한 문서와 사건을 기록한 일기다. 이와 별개로, 그가 번역과 교감을 주도한 위의 세 문헌은 왕명 출납의 절차부터 인사·재정·의례·군사·사법·과거시험까지 조선 후기 국가 행정이 실제로 작동한 절차와 관행을 집대성한 승정원의 실무 지침서다. 국왕과 신하 사이의 소통, 국가 행정과 언론·견제 제도가 작동한 방식을 살필 수 있는 조선의 국가운영 매뉴얼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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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대편고는 조선이 왕정국가라 해도 임금의 통치 행위와 국가 행정은 전제군주 같은 일방적 지시와 무조건 집행이 아니라, 깨알같이 규정된 엄격한 절차에 따라 시행됐음을 잘 보여준다. 책의 구성을 보면, 승정원의 여섯 승지가 분담했던 육방(오늘날의 중앙 행정부처에 해당한다)의 업무에 따라, 이방고·호방고·예방고·병방고·형방고·공방고로 나누고, 여섯 방에 공통되는 업무와 승정원 자체 규정 등은 통방고로 묶었다.

이강욱 은대학장 명예교수가 편찬한 ‘교점역주 은대편고’의 한 페이지. 과거 시험 중 중광시의 시행 규정의 일부다. 김은정 기자 ejkim@hani.co.kr
이강욱 은대학장 명예교수가 편찬한 ‘교점역주 은대편고’의 한 페이지. 과거 시험 중 중광시의 시행 규정의 일부다. 김은정 기자 ejkim@hani.co.kr

예컨대, 이방고의 항목 중 신하가 올린 상소에 대한 임금의 비답(답변)을 뜻하는 ‘소비’(疏批) 편의 조문은 이렇다. “임금이 대신의 상소나 차자에 대한 비답을 신시(申時)가 되도록 내려주지 않으면 넌지시 여쭈고, 궐문이 닫힐 때까지 내려주지 않으면 또 여쭈며, 밤이 깊도록 내려주지 않으면 3경1점에 또 여쭈고, 밤이 새도록 내려주지 않으면 이튿날 아침에 또 여쭌다. 비답에 ‘경의 간절한 마음’(卿懇)이라는 두 글자가 없는 경우에도 여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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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2010년 1월 한국승정원일기연구소(현 은대고전문헌연구소)와 부설 교육기관 은대학당을 설립해 우리 기록문화유산을 연구, 번역하는 일을 해오고 있다. 한겨레는 지난 10일 강원도 원주시에 있는 은대학당을 찾았다. 치악산 자락의 자갈 마당이 넓은 단독주택이었다.

그는 이번 은대편고 출간의 의미를 두가지로 설명했다. “첫째, 은대학당 개설과 함께 시작한 승정원 업무 지침서 3종의 완역을 16년 만에 마무리했다는 것. 둘째는, 역주서와 별개로 조선 왕실과 행정어휘 사전을 편찬한 겁니다. 학술적 의미가 크고 보람도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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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에서는 낯선 어휘를 현대어로 지나치게 풀어쓰면 읽기는 쉬운데 본디 의미가 왜곡될 수 있고, 원어를 그대로 두면 독자가 이해하기 어렵다. 어휘 사전은 조선시대의 관직·공문서·의례·인사·사법 등 방대한 분야의 낯설고 어려운 행정 용어 1200여개를 표제어로 추출해 뜻과 용례를 풀이했다. 정확성과 가독성 사이에서 고심한 학구열이 빚어낸 성취다.

이씨가 한문 공부를 시작하고 사료 번역의 한길을 걷게 된 건 운명 같은 것이었을까. 그의 고향은 전북 임실군 오수면. 주인을 구한 의견(義犬) 이야기가 전해오는 곳이다. “어렸을 때 군산으로 이사해서 초·중학교를 마치고 고등학교 1학년 때 자퇴했어요. 제 꿈이 육군사관학교 진학이었는데 신체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죠. 육사에 가지 못할 바에는 공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어려서부터 책을 읽는 건 좋아했다. “저희 집안이 한학을 하는 집안이었어요. 외숙부님께서는 일제 강점기에 사범학교를 나오셔서 고향에서 서당을 하셨습니다. 제 형님들은 어려서 서당에서 공부를 했는데, 저도 집안 분위기의 영향을 받은 것 같습니다.”

그는 19살 때(1979년)에 부산의 한 가전제품 부품 제조업체에 취직해 일하다가 보충역(방위)으로 군 복무를 마치고 1983년 10월 품질관리 사무직으로 복직했다. 그로부터 불과 3주 뒤, 삶의 향방을 바꿔놓은 대형 사고가 일어났다. 금속판을 찍어 눌러 형태를 만드는 초대형 유압프레스의 금형(金型)에서 제품을 꺼내는 일을 돕던 중 육중한 가압부(램)가 내려와 두 손을 모두 잃은 것. 공장 관리자의 실수로 생긴 산업재해였다. “눈앞에서 두 손이 짓눌려 사라지는 걸 보고는 곧바로 기절했죠.” 1983년 11월11일 오전 11시. 스물셋 청춘의 앞날이 한순간에 캄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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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욱 은대학당 명예교수가 의수를 사용해 글자를 쓰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e이승배 기자 photolee@hani.co.kr
이강욱 은대학당 명예교수가 의수를 사용해 글자를 쓰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e이승배 기자 photolee@hani.co.kr

부산의 한 병원에서 응급 처치를 했다. 의사에게 “한 손만이라도 살려주십시오”라는 말이 절로 터져 나왔다. “어떻게든 글씨는 쓰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하지만 잘린 손을 되찾을 수는 없었다. 이듬해인 1984년 초, 서울 세브란스재활병원으로 옮겨 5개월가량 재활치료를 했다. 한동안 밥 먹는 것부터 화장실 가는 것까지 보조인의 도움을 받았다.

“그런데 재활치료 선생님도 두 팔이 없는 분이셨어요. 그분이 제게 왜 아직도 스스로 밥을 못 먹고 남이 먹여준 걸 먹느냐고 하더니, 고무밴드를 제 팔에 끼워주는 겁니다. 숟가락을 낄 수 있도록. 그러고는 밥하고 김치, 물만 갖다주며 먹어보라고 해요. 그렇게 혼자 힘으로 먹는데, 세상에 그렇게 맛있는 밥이 없어요. 남들이 먹여주면 맛있을 것 같은데, 정말 맛없는 밥이 남이 먹여주는 밥입니다.” 팔로 사인펜을 잡고 글씨 쓰는 연습도 했다. ​“처음엔 삐뚤빼뚤 서툴렀지만 연습할수록 좋아졌”다.

양팔에 의수를 하고 재활치료를 마친 뒤 퇴원했다. 하지만 중증 장애인에게 세상은 녹록지 않았다. 한동안은 집에서 신문을 정독하고 책을 읽는 게 일과였다. 1985년 제1회 공인중개사 시험을 봐 합격했다. 1986년엔 제1회 공인노무사 시험에 응시했지만 2차 논술시험에 낙방했다.

“단지 먹고살기 위해 이런 공부를 계속해야 하나,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보다 뭔가에 끌려다니는 삶을 살았던 것 같아요. 짧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야겠다고 결심했죠. 이듬해(1987년) 봄에 전주향교 옆의 한문서당을 찾아가 공부를 청했습니다.”

그렇게 명심보감부터, 소학, 고문진보, 사서(대학·중용·논어·맹자) 삼경(시경·서경·주역) 등을 차례로 떼었다. 수업료와 생활비는 얼마 받지도 못한 산재 보상금으로 충당했다. 그런 중에도 그는 1988년 5월 한겨레신문의 창간 주주로 참여해 얼마간의 종잣돈을 보태기도 했단다.

내친김에 대학에서 더 깊은 공부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최종학력 ‘고교 중퇴’로는 대학에 갈 수 없었다. 1991년 4월 고등학교 졸업 학력 검정고시에 합격한 그는 독학사(독학학위제) 과정으로 국어국문학을 공부했다. 독학학위제는 대학에 다니지 않고도 4단계 과정을 공부해 국가 시험을 모두 통과하면 4년제 대졸과 동등한 학사 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제도다. 그는 1993년 2월 제1회 독학사 학위수여식에서 국어국문학과 전국 수석으로 교육부장관상을 받았다. 고등학교와 대학교 7년 과정을 3년 만에 마친 셈이다.

1993년 2월10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1회 독학사 학위수여식에서 이강욱(당시 33살)씨가 국어국문학과 전국 수석을 차지해 교육부장관으로부터 학위증서를 받고 있다. 이강욱 은대학당 명예교수 제공
1993년 2월10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1회 독학사 학위수여식에서 이강욱(당시 33살)씨가 국어국문학과 전국 수석을 차지해 교육부장관으로부터 학위증서를 받고 있다. 이강욱 은대학당 명예교수 제공

그해 8월에는 성균관대 유학대학원(유교경전학과)에 진학해 1996년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성균관 부설 한림원에서 한문 공부, 국사편찬위원회에서 고전 번역과 한자 초서 공부도 병행했다. 승정원일기는 승지(정3품) 아래 직급인 주서(注書, 정7품)가 초서체로 속기를 한 뒤 나중에 정서체로 옮겨져 실록 편찬의 사료가 되기 때문이다.

그는 1998년 민족문화추진회(현 한국고전번역원)의 국역(國譯)위원 시험에 합격해 ‘홍재전서’(정조의 문집)와 ‘일성록’(조선 후기 왕들의 언행과 국정 기록)의 번역에 참여했다. 이어 2001~2007년에는 국사편찬위원회가 추진한 승정원일기 정보화 사업(영인본 원문을 전산 데이터베이스로 구축)의 팀장으로 일하면서 승정원의 업무, 나아가 조선의 행정체계와 통치 철학에 관심을 갖게 됐다. 한문 고전 공부가 조선의 사료 연구와 번역의 길로 이어진 것이다.

그는 “그렇게 쌓아온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고 전승”하고 싶어졌다. 2010년 한국승정원일기연구소와 부설 은대학당을 세우고, 우리 기록문화 유산의 연구와 번역, 교육을 시작했다. 처음엔 무료 강의였는데, 2016년 서울 광화문 인근에 강의실을 얻고 교육 과정도 늘어나면서 수강료를 받기 시작했다. “첫해 수강생 21명 중 14명이 한국고전번역원 국역위원이었습니다.” 2020년 초 코로나19 이후 온라인 강의로 전환하면서 수강생도 전국으로 범위가 넓어졌다. 지금까지 누적 입학생 수가 500명을 넘었는데, 2년 과정을 수료한 비율은 3분의 1 정도에 그친다고 한다. 그만큼 힘들고 끈기를 요구하는 공부일 테다.

수업은 수강생이 교재를 번역해 발표하면 그가 어휘와 문맥을 검토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본문 조항만으로는 규정이 만들어진 배경을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 관련 참고자료를 찾아 함께 검토했다. `정원고사'와 ‘은대편고’의 번역도 이런 방식으로 진행한 결과물이다.

강원도 원주시 치악산 자락에 자리잡은 은대학당 전경. 이승배 기자 photolee@hani.co.kr
강원도 원주시 치악산 자락에 자리잡은 은대학당 전경. 이승배 기자 photolee@hani.co.kr

특히 ‘은대편고’는 분량이 많아 연구와 번역에 8년이라는 시간과 많은 인력이 필요했다. 그러나 초벌 번역이 끝나도록 수강생들에게 원고료를 전혀 주지 못한 채 뒤 감수와 교열을 이어가던 중, 아이비케이(IBK)기업은행의 사회공헌사업 지원금을 받아 겨우 출간을 마칠 수 있었다.

그는 현재 국가의 사료 번역 사업의 한계를 지적했다. “민간 연구자들은 국가기관의 번역 용역사업에 응찰해 선정되면 거기서 주어진 책만 번역하게 되는데, 공개경쟁 입찰이라 싸구려 번역이 강요될 수밖에 없습니다. 전문 연구자들이 중요하다고 판단한 사료를 번역하고 국가가 지원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국책사업으로 시행 중인 승정원일기 번역도 더딘 편이다. 승정원일기는 총 3243책, 약 2억4300만 자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으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2001년 등재)이다. 1994년 한국고전번역원의 전신인 민족문화추진회(당시는 민간기구)가 번역에 착수한 이래 올해로 32년째, 번역률은 37.4%(2024년 12월 기준)에 불과하다. 국가가 얼마나 관심을 갖고 예산을 쓰느냐에 따라 번역 시간을 줄이고 품질은 높일 수 있다.

그는 승정원일기에 기록된 삼사(사헌부·사간원·홍문관)의 기능과 대간의 계사(왕에게 올리는 보고서)들을 살피면서 권력 견제의 원리를 읽었다. 대간은 사헌부와 사간원의 관직인 대관(臺官)과 간관(諫官)을 일컫는데, 왕의 잘못을 간언하고 관료의 비리를 탄핵하는 언론·감찰 기능을 수행했다. 대간이 자신과 관련된 사안으로 물러나겠다고 하면 국왕이 개입하지 않고 동료 관원이 판단하게 했다. 그는 “언관에 대한 국왕의 간섭을 배제해 소신껏 간언을 할 수 있도록 한 취지”라고 설명했다.

세종의 공법 시행 과정도 주목할 만하다. 공법은 현물세인 전세(田稅)를 토지의 비옥도와 풍흉에 따라 차등 부과하려는 개혁이었는데 찬반양론이 거셌다.

“세종은 시행에 앞서 전국에 여론조사를 했습니다. 찬성 9만8657명, 반대 7만4149명이 나왔는데, 세종은 다수결로 밀어붙이지 않고 반대 의견을 수렴하고 시범사업으로 제도를 보완했어요. 처음 발의부터 전면 시행까지 무려 14년이 걸렸습니다. 그야말로 민주 정치, 책임 정치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조선의 왕정과 오늘날 민주주의를 동일시할 수는 없지만, 기록을 통해 정책 결정 과정과 권력의 책임을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삼사가 제구실을 못 할 때는 극단의 정치가 나타나는 걸 확인했다.

“대표적인 게 숙종이 왕권 강화를 위해 붕당의 집권세력을 교체해가며 정국을 좌우한 환국(換局)정치입니다. 서인-남인, 노론-소론의 당파 싸움이 피비린내 나는 숙청으로 이어졌잖아요. 숙종대 기록을 번역하다 보면, 이번 주 번역에서 정승을 하고 판서를 하던 인물이 그다음 주에 와서 보면 역적이 돼 있어요. 삼사의 견제·비판 기능과 왕정의 민심 수렴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이강욱 은대학당 명예교수의 집무실에 그가 번역 중인 조선의 법전 ‘대전통편'이 놓여있다. 이승배 기자 photolee@hani.co.kr
이강욱 은대학당 명예교수의 집무실에 그가 번역 중인 조선의 법전 ‘대전통편'이 놓여있다. 이승배 기자 photolee@hani.co.kr

그는 번역을 “소통”이라고 정의한다. “승정원의 기능을 한마디로 얘기하면 국왕과 신하를 소통시켜주는 역할이었고, 승정원일기도 군신 간에 소통한 내용이거든요. 번역도 그런 것 같습니다. 한문으로 쓰인 원작자의 저술 의도를 독자에게 정확히 전달하는 것이지요.”

그는 지난해인 2025년 1월부터는 조선 4대 법전의 번역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경국대전(성종 16년, 1485년), 속대전(영조 22년, 1746년), 대전통편(정조 9년, 1785년), 대전회통(고종 2년, 1865년)이다. 은대학당의 법전 연구 과정에서 모두 8명이 매주 강의와 번역을 병행하고 있는데, 통상 2년 과정의 다른 학과목과 달리 법전 번역은 6년 과정으로 2030년 완료를 목표로 삼았다. “법전은 조선의 국가 운영과 행정, 형벌, 사회질서를 이해하는 핵심 자료입니다. 그 번역은 사실 국가가 주도해야 할 일이지요.”

서당 공부를 시작으로 독립 연구자의 길로 들어선 지 40년, 그에게 공부의 의미는 무엇인지 물었다.

“사는 것 자체가 공부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손을 다치기 직전까지만 해도 제게 그런 일이 닥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잖아요. 두 손을 잃고 나서 배운 것도 있어요. 내가 아무리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도 한순간에 잃어버릴 수 있구나, 하는. 그러한 경험이 있어 지금까지 큰 욕심 부리지 않으면서 살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는 강의를 하면서도 배운다고 했다. “사서삼경 중 서경에 ‘효학반’(斅學半)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가르치는 것이 배움의 절반이라는 뜻입니다. 또 예기에는 ‘교학상장’(敎學相長), 즉 가르치고 배우며 함께 성장한다는 말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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