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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October 10, 2026

[끊는 사람들]⑪ 여성 중독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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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는 사람들]은 기자가 오랜 기간 지켜봐 온 마약류 중독 당사자들이 약물을 끊으려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담아내는 연재입니다.

중독 당사자의 회복은 아직도 쉽지 않습니다. 약물 중독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기란 너무도 어렵습니다. 도움을 받으면 끊을 수 있지만 여전히 지원이 부족합니다. 중독 당사자들이 공적 도움을 받으려면 여론이 있어야 합니다. ‘왜 약쟁이에게 세금을 써야 하느냐’는 힐난이 아니라, 이들을 돕지 않으면 앞으로 우리 사회가 더 큰 어려움에 빠진다는 현실 인식이 필요합니다. [끊는 사람들] 연재를 보시는 분들을 감히 설득하고자 합니다.

중독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처방약에 의한 중독 문제, 중독 당사자 가족들의 공동의존 문제, 여성 중독 당사자들이 겪는 막막한 현실 등의 문제를 전할 예정입니다. 나아가 우리 사회 회복 시스템의 문제를 말합니다. 연재를 보시는 분들이 중독 당사자들의 이야기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⑩편에서 이어짐)

[지난 이야기] 다혜는 경찰에 쫓기는 신세가 됐다. 다혜의 곁에는 항상 약을 하는 남자들이 있었다. 끝은 항상 파국이었다. 다혜는 폭력에 시달렸다. ‘죽어야 끊겠구나.’ 다혜도 수많은 중독자들이 이르는 그 결론에 다다랐다. 26살, 세정제를 들이켰다. 천만다행으로 다혜는 살아났다. ‘한 번만 평범하게 살아보자’. 죽다 살아나니 하고 싶은 것들이 눈에 보였다. 다혜는 다른 중독자들을 돕기로 마음먹었다. 회복은 엄마와의 관계를 다시 쌓는 과정이기도 했다. 다혜는 앞으로 더 많은 여자들을 살릴 것이었다.

한 불안한 여자가 있다. 외모도, 성취도, 현실도, 뭐 하나 만족스럽지가 않다. 불안한 여자는 자신을 사랑하고 싶지만 방법을 모른다. 여자는 위로가 급하다. 위안 받을 길을 다급하게 찾는다. 예전만 해도 이런 여자들의 도피처는 술이거나 남자였을 것이다. 이제는 약물이란 것이 등장했다. 만나는 남자가 마약을 권한다. 함께 행복하고 싶다며, 너를 사랑하기에 건네는 것이라며, 한 번만 하면 문제가 없다며. 그러나 그 길 끝엔 위로도 행복도 사랑도 없다. 모든 걸 잃게 만들 중독이란 녀석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을 뿐이다.

여성 중독 당사자들을 만나 온 지난 3년 동안 들은 이야기의 평균치는 대개 이렇다. 여성 중독자들의 현실은 유독 가혹하다고 느꼈다. 약물 중독 문제는 사회를 그대로 반영한다. 여성 중독자들이 겪어 온 시간은 이 사회가 여성을 대하는 일그러진 면을 보여줬고, 이들은 그걸 온몸으로 겪어냈다. 여성 인권이 이렇게나 신장됐는데 대체 아직도 어떻게 여성이 객체화된다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이가 있다면 여성 중독 당사자들의 현실을 말해주고 싶을 정도다.

여성도 남성도, 중독 당사자들은 약물로 달려가려는 자신과 투쟁하면서 무너진 자존감을 일으킨다. 여성 중독자들은 여기에 더해 자신의 성(性)이 어떻게 존재를 더 고달프게 만드는지, 성을 이유로 존엄이 얼마나 더 무너질 수 있는지를 절감한다.

여성 중독 당사자들은 마음 편히 회복하기도 어렵다. 약을 하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받았던 시선과 선입견이 회복 공동체의 문을 두드리기 어렵게 만든다. 중독자였다가 회복했다는 남성 활동가들은 많이 보이는데, 여성은 좀처럼 만날 수 없는 이유다. 여성 회복자가 보이지 않는 현실은 중독에서 벗어나고 싶은 여성을 다시 음지로 숨게 만든다. 악순환이다.

여자에게 약 권하는 남자들

지금까지 만난 여성 중독 당사자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남자가 권해서’ 약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약을 몰래 음료나 술에 타서 마시게 하는 ‘퐁당’이라든지 ‘몰래뽕’이라든지 하는 노골적 악의도 주요 투약 경로다.

혜성(44·가명)은 ‘퐁당’ 피해자다. 2019년, 혜성이 호감을 갖고 만나던 남자는 첫 만남부터 그에게 몰래 필로폰을 먹이고 있었다. 함께 기울이던 500㏄ 맥주잔에 무색무취의 메스암페타민 결정체가 녹아들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건 다섯 번째 만남에서였다. 함께 호텔에 간 날이었다. 남자는 개봉된 맥주캔을 건넸다. 마시지 않겠다는 혜성에게 “시원하게 한 잔 하라”며 굳이 캔을 쥐여주고는 맥주를 들이키는 것을 끝까지 지켜봤다고 한다. 몸이 늘어지는가 싶더니 눈앞이 핑글핑글 돌았다. 온몸 혈관을 하나하나 느낄 수 있을 만큼 전신이 말초까지 찌릿했다.

남자의 말이 황당했다. “사실 내가 그동안 네 잔에 몰래 뽕을 타고 있었다. 너에게 호감이 있어서 그랬다.” 혜성은 그간의 만남을 돌아봤다. “두 번째 만날 때부터 걔만 보면 심장이 막 뛰고 ‘내가 얠 사랑하나’ 싶었거든요.” 남자는 놀랍게도 ‘잘못된 것은 없다’는 태도였다. “같이 하면 기분이 좋아질 것”이라며 끈질기게 약을 권했다. “다 큰 성인끼리 그저 호감이 있는 상황에서 만난 건데 이렇게 당했다니까 너무 당황스럽고 무서웠어요.” 두려운 혜성은 몇 번이고 남자를 뿌리쳤지만 혈관을 타고 저릿하게 올라왔던 감각의 기억에 붙들리고 말았다.

이후로는 익숙한 전개의 이야기다. 혜성은 남자와 약을 하게 되었다. 남자는 혜성에게 ‘기분이 얼마나 좋은지’를 집요하게 물어댔다. 2019년 여름부터 1년간 삶에서 지우고 싶은 시간이 펼쳐졌다. 남자는 만날 때마다 약을 가져왔고, 혜성에게 투약하는 양을 점점 늘렸다. “내가 자수하면 너도 처벌받을 것”이라는 협박도 이어졌다. 가장 고약한 부분은 신고를 빌미로 남자가 혜성을 성적으로 착취했다는 것이다. 혜성이 마침내 이 남자와 맞서겠다고 결심하기 전까지, 남자는 혜성을 성적 욕구를 푸는 도구로 삼았다. 그 사이 혜성은 너무 많은 양을 한꺼번에 투약해 쇼크로 쓰러지기도, 생사의 기로에 서기도 했다. 혜성의 신고로 법정에 선 남자는 ‘마약은 여자가 먼저 하고 있었다’며 발뺌했지만 다행히 혜성이 모은 증거가 촘촘했다. 남자는 징역 2년3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성폭행 혐의는 ‘둘 사이에 있던 일’이라며 인정되지 않았다.

다혜도 각기 다른 세 명의 남자에게서(⑩편 참조) 약을 권유받았었다. 부산에서 익명의 약물중독자(Narcotics Anonymous·NA) 여성 모임을 이끄는 활동가 보연(44·가명)의 경험도 같다. “그냥 남자가 준 맥주를 마셨을 뿐인데 그게 마약이었다”고 했다. 서울의 한 NA 모임에서는 다른 여성의 잔에 마약을 타봤다는 20대 남자를 만났다. 그는 “자신도 약물로 뇌가 망가져서, 미안한 일이라는 걸 몰랐다”고 말했다. 평범한 얼굴이었다.

끈질기게 따라오는 편견

끊으려고 해도 도움을 받을 곳이 없다. 다혜도 갈 데가 없었다. 지금을 문을 닫은 경기도 다르크(DARC)에서 잠깐 여성 다르크를 운영할 때 겨우 공동체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나마도 최대 네 자리뿐이었다. 면접을 보고 나서야 입소할 수 있었다. 애써서 들어간 곳인데, 실상은 엉망이었다. 여성과 남성 중독자가 채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 지붕 아래 있다 보니 사고가 터지기 일쑤였다. 두 사람이 “눈이 맞아” 함께 약을하러 도망나가는 일이 생겼다. 남자 입소자들이 모여서 여성 입소자들 외모 품평을 하는 현장을 보기도 했다. 물론 다혜의 이야기도 포함이었다.

원희(27·가명)는 필로폰을 끊기로 마음먹고 한 재활센터를 찾았다. 중독자 출신인 남성 센터장은 원희의 엄마 앞에서 자신의 옛 이야기를 실컷 들려줬다. “노래방 아가씨들이랑 놀면서 주사기 다섯 칸씩 약을 밀어넣고 그랬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고 한다. 원희와 엄마는 충격을 받고 이 센터에는 들어가지 않기로 했다. 원희는 후에 이 센터에 있던 여성 입소자를 알게 된다. 그는 “자신은 못생겨서 남자들이랑 지내도 별 문제 없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한국에서 마약류 투약은 대체로 성관계 시 필로폰을 이용하는 형태다. NA 모임에 가도, 병원 자조 모임에 가도, 재활 공동체에 입소해도, 여성은 투약 이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남성에게서 모종의 시선을 받는다. 원희도 끊임 없이 그런 눈길을 느꼈다. 가장 큰 상처는 남자친구에게서 받았다. 잘 회복하던 중 만난, 약물 문제와 관련 없는 남자친구였다. 그는 원희에게 “널 사랑하지만, 네가 성적으로 문란했을 것 같아서 생각할 때마다 괴롭다”고 말했다. 아무리 아니라고 말을 해도 믿지 않았다. 원희는 “앞으로 다른 남자친구를 만나더라도, 과거에 대해서는 완전히 속터놓고 말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약을 해본 남자든 안 해본 남자든, 다 그렇게 똑같이 생각하더라고요. 말을 안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NA 모임도 별로 나가고 싶지가 않다. “지금 단약을 잘 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모임이 필요해질 거예요. 그런데도 가기가 싫어요. 가면 어디든 남자들이 더 많잖아요. 이제 제가 등장하는 것만으로 인식이 어떠지 아니까 안 가고 싶은 거예요. 무슨 말을 해도 자기 마음대로 생각할 거고요. 가는 것만으로 수치스러운 느낌이 들어요.”

썬은 얼마 전 자신에게 도움을 청한 한 여성 당사자의 이야기를 전했다. 약물 투약으로 수사를 받아 재판에 넘겨지게 된 상황이었다. 변호사 사무실을 찾았다. 사무장은 상담을 하다가 별안간 성관계를 입에 올렸다. 관계에 응하면 변호사비를 감면해주겠다는 제안이었다.

(⑫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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