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화합은 사라지고 분열만 남은 한국 축구
축구국가대표팀은 그 나라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 11명이 모인 팀, 그 이상 의미를 지닌다. 서로 다른 지역과 세대, 생각을 가진 선수들이 국가를 대표한다는 일념으로 하나로 뭉치는 곳이다. 많은 사람들이 월드컵만 되면 자신이 응원하는 구단과 선수가 달라도 태극마크 아래 같은 편이 된다. 대표팀이 국민에게 주는 것은 승리만이 아니라 공동체 의식의 공유와 경험이어야 한다.
지난 10년 동안 한국 대표팀은 우리 사회에 무엇을 남겼을까.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독일을 2-0으로 꺾었고,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포르투갈에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며 16강에 진출했다. 그런데 2026년 북중미 월드컵에서는 체코를 이긴 뒤 멕시코와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모두 져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성적도, 경기력도, 선수단 태도도 엉망이었다. 축구에서는 누구나 질 수 있다. 더 중요한 점은 대표팀이 성적 부진 속에서도 여전히 국민에게 신뢰과 존중을 받느냐는 것이다.
2023년 축구협회는 승부조작 가담자 48명을 포함한 징계 축구인 100명을 사면하려다 반발에 부딪쳐 철회했다. 2024년에는 위르겐 클린스만과 홍명보 감독 선임 과정에서 절차적 정당성 문제가 제기돼 극심한 비판이 일었다. 그해 아시안컵 손흥민과 이강인간 충돌, 최근에는 92년생과 96년생 간 해묵은 갈등까지 겹치면서 국민적 실망감을 더하고 있다.
한국 축구가 잃은 것은 승리가 아니라 신뢰다. 손흥민의 결정력, 이강인의 창의성, 김민재의 수비력은 중요한 자산이다. 그 능력들이 하나의 목표로 결합되지 못하면 대표팀은 유명 선수들의 이기적인 집합에 머문다. 축구는 개인 종목이 아니다. 동료의 실수를 메우고, 자신의 욕심을 줄이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동료를 위해 더 뛰는 자세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팬덤 문화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특정 선수를 좋아하고 그 선수를 계기로 축구에 관심을 갖는 것은 자연스럽다. 문제는 특정 선수에 대한 지지가 대표팀 전체에 관한 판단을 압도할 때다. 좋아하는 선수가 뛰지 못한다는 이유로 감독을 공격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선수와 갈등을 빚었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선수를 비난하는 일이 반복된다. 대표팀도, 선수도 팬의 장난감, 노리개가 아니다. 팬덤이 과도한 충성심, 집단적 방어, 감정적 동일시와 결합하면 이성적 판단보다 감성적 편향으로 변질하는 걸 우리는 최근 다른 여러 분야에서도 계속 확인하고 있다. 대표팀을, 특정 선수를 사랑한다고 모든 걸 찬성하거나 자신과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을 무작정 비난하는 것은 광신도 집단이나 하는 행태다.
감독과 주장에게 요구되는 책임도 분명하다. 감독은 선수들을 이용해 단순히 경기를 이기려는 사람이 아니다. 서로 다른 선수들을 하나의 철학 아래 묶고, 갈등을 조정하고, 원칙을 지키며 조화를 이끌어내는 리더이어야 한다. 주장 완장도 위기에 동료들이 믿고 따를 수 있는 리더에게 주어지는 책무다. 공동의 목표를 위해, 동료를 위해 참고 희생하며 배려하고 책임져야 하는 게 주장이다.
대표팀에는 누가 감독이 되더라도 선수단 모두 국민을 대표한다는 철칙, 누가 주장이 되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상호 존중과 희생정신, 대단한 슈퍼스타가 있어도 평등한 공동체에 대한 굳건한 책임이 있어야 한다. 태극마크는 특정 선수의 것도, 감독의 것도 아니다. 대표팀이 국민에게 보여줘야 할 것은 선수들의 경기력만이 아니라 서로 존중하고, 공정하게 경쟁하고, 공동의 목표를 위해 서로 희생하고 서로 도우며 기꺼이 절제하고 치열하게 노력하는 모습이다.
정치는 사람들 사이 분열을 조장한다. 그게 정치에 대한 불신을 자초하는 태생적 한계다. 반면 스포츠는 사람, 사회, 국민의 화합을 지향한다. 그게 정치와 완전히 다른, 스포츠가 추구하는 아름답고 고귀한 가치다. 축구대표팀 내부와 그를 둘러싼 구도에서 나오는 숱한 잡음들, 대표팀을 임의로 재단하고 선수들을 갈라치는 편견들, 자기망상에 가까운 허황된 주장과 합리적 판단을 거부하는 독선들을 보면 한국 축구판은 이미 정치판이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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