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선면]소방관의 눈물, 정치인의 사과
추미애 경기도지사가 지난 13일 경기 수원시 경기도청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경기도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를 듣고 있다. 정효진 기자
“소방이 가장 큰, 골치 아픈 재정 빨대 같다.”
추미애 경기도지사의 말 한마디에 정국이 시끌시끌합니다. 추 지사는 취임 한 달여 만에 경기도 재정이 비상 상황이라고 선언했습니다. 같은 견지에서 소방 재정에 관해 발언하다가 탈이 난 것인데요. 오늘 점선면에서는 추 지사 발언의 맥락을 짚는 한편 정치가의 언어와 행정가의 언어에 대해서 고민해 봅니다.
점(사실들): “골치 아픈 재정 빨대”
추미애 지사는 지난 13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행안위) 경기도 대상 국정감사에서 “소방이 가장 큰, 골치 아픈 재정 빨대 같다”고 말했습니다. 행안위원인 권영진 국민의힘 의원의 질의에 답하는 과정에서 나온 발언인데요. 소방공무원이 국가직으로 전환되었는데도 여전히 국비 보조 비율이 낮다는 맥락에서 이런 말이 나왔습니다. 소방 조직이 재정 낭비의 원흉인 것처럼 묘사함으로써 소방을 폄훼한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됐습니다.
이 발언 사흘 뒤인 지난 16일 경기 부천시 한 공장에서 큰 불이 났습니다. 화재를 진압하던 소방관 1명이 끝내 숨졌고, 다른 소방관 1명도 크게 다쳤습니다. 추미애 지사는 순직 소방관의 조문을 마친 뒤 ‘재정 빨대’ 발언을 사과했습니다.
선(맥락들): 화려한 정치 이력, 사과는 초라
문제의 발언은 추미애 지사가 경기도 재정이 비상 상황이라고 선언한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는 도지사 취임 한 달 만인 지난 8월 이같이 선언하고 지출 삭감에 돌입했어요.
추미애 지사는 경기도 재정이 위험하다는 주장을 유지하면서, 소방공무원이 2020년 4월 국가직으로 전환됐으니 소방 재정은 대부분 국세가 보조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소방 재정에서 국세가 차지하는 비율이 국가직 전환 당시는 14.7%, 지난해에는 10.7%로 오히려 줄었다는 거죠.
이에 추미애 지사는 특정 지방세의 용도를 변경해서 소방 재원을 확보하겠다고 했습니다. 권영진 의원은 한시적인 방책에 불과하니 국세 비율을 늘리는 게 먼저라고 지적했고요. 여기에 추 지사가 동의하는 과정에서 “의원님 말씀처럼 소방이 가장 큰, 골치 아픈 재정 빨대 같다”고 말한 겁니다.
소방공무원이 국가직으로 전환된 이후에도 지방 재정에 의존하는 현실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은 일리 있습니다. 문제는 추미애 지사의 발언과 이후 대처입니다.
‘소방 재정 빨대’ 발언으로 논란을 빚은 추미애 경기도지사가 지난 16일 경기 부천시 오정구의 도장공장 화재 현장을 찾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는 동안 소방관들이 이를 지켜보고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추미애 지사는 6선 국회의원, 법무부 장관, 여당 대표를 지낸 정치인입니다. 화려한 정치 이력을 가졌지만 소방직을 “골치 아픈 재정 빨대”라고 표현한 것은 정무 감각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요. 소방직은 업무 강도가 높고 위험하며, 때로는 희생도 따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려 깊지 못한 표현을 썼다면 신속하고 진솔하게 사과했어야 합니다. 추미애 지사의 사과는 너무 늦었습니다. 문제의 발언 후 나흘이나 흐른 뒤에 첫 사과가 나왔어요.
이 사과마저 비판을 불렀습니다. 추 지사는 “제 의도와 다르게 전달이 됐다면 깊은 유감의 말씀을 드리고” “사과를 바라시니까, 정말 마음을 다해서 사과드린다”고 말했는데 ‘사과를 바라니까 사과드린다’는 표현이 문제가 됐어요. 그나마도 화재를 진압하다 순직한 소방관을 조문한 뒤에야 나온 사과입니다.
면(관점들): 정치인 추미애와 행정가 추미애
추미애 지사가 정말 소방 업무를 소홀히 여기고 있었다고는 믿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추미애라는 정치인의 정치 궤적을 돌아보게 됩니다.
추미애 지사는 민주진영에서 가장 선명성이 강한 정치인이었습니다. 강경한 검찰개혁 노선을 주장했고요. 내내 투쟁적인 정치인의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정치적 상대편은 타협하기보다는 넘어서거나 청산해야 할 대상으로 대했어요. 더불어민주당의 강성 지지층은 추 지사를 열렬히 지지했고요. 그는 경기도지사에 취임한 후에도 검찰개혁과 관련해 강경한 의견을 드러냈습니다. 중앙정치에 관여하는 광역단체장이란 의미로 ‘여의도지사’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어요.
추미애 경기도지사가 지난 17일 경기도 순천향대 부천병원 빈소에 마련된 고(故) 김진석 소방위 빈소 조문을 마친 뒤 취재진 앞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처음 정한 위치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겠다는 확고부동한 태도, 밀리면 끝이라고 믿는 듯한 모습이 행정가가 된 이후에도 관찰됩니다. “소방관을 폄훼할 의도는 전혀 없었다” “의도와 다르게 전달됐다면 깊은 유감” “사과를 바라시니까 마음을 다해 사과” 같은 그의 언어도 이런 맥락에서 바라보게 돼요.
정치인 추미애와 행정가 추미애는 달라야 합니다. 그는 이제 경기도정을 총괄하는 최고 책임자예요. 더 이상 명분에서 밀리면 끝장나는 정치인이 아니기 때문에, 발언의 진의나 책임 여부를 따지는 것보다 진솔한 사과로 도민의 마음을 위로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 우선이겠죠.
경기도민 중에는 추미애 지사의 개혁에 동의하는 사람도,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터예요. 추 지사가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경기도지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울러, 순직한 고 김진석 소방위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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