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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October 15, 2026

책방에서 책 읽다 창밖을 보니 경운기가 탈탈탈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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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오래된 미래’에선 경운기가 서점 앞을 지나가는 등 다른 책방에선 좀처럼 보긴 힘든 풍경이 연출된다. 최갑수 제공
책방 ‘오래된 미래’에선 경운기가 서점 앞을 지나가는 등 다른 책방에선 좀처럼 보긴 힘든 풍경이 연출된다. 최갑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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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챗지피티를 꾸준히 쓰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오늘의 운세’다. 매일 아침 채팅창을 열고 “오늘의 운세를 부탁해”라고 입력한다. 물론 재미로 보는 편이다. 이 원고를 쓰는 10월1일의 운세는 “새로운 일을 벌이기보다, 이미 잡은 일을 정리하고 밀어붙이는 날”이라고 나왔다. 챗지피티는 이렇게 덧붙였다. “오늘은 아이디어를 마구 확장하는 날보다는 원고를 읽고 고치고, 구조를 잡고,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일에 힘이 실린다고 보는 게 맞아.” 그래서 오늘은 챗지피티의 조언대로 쓰던 원고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나 말고도 심심풀이 삼아, 혹은 조금은 진지하게 에이아이(AI)로 운세나 사주를 보는 사람이 많지 않을까 싶다. 고백하자면 나 역시 만세력을 캡처해 재물운과 사업운(내 경우엔 집필운이겠지), 말년운(이제 50대 중반이니까)을 물어본 적이 있다. 예상대로 재물운은 그다지 없었다. 대신 굶어 죽지는 않는단다(뭐 그 정도면 만족한다). 말년운은 다행히 나쁘지 않았다. 공개하자면 이렇다. “화려한 말년보다는, 50대 후반부터 자기 이름으로 만든 일을 자산화하면서 조용하고 단단하게 살아가는 말년.” 나는 ‘써놓은 글로 저작권료를 받으며 한가롭게 사는 말년’ 정도로 해석했다. 챗지피티는 충고도 빼놓지 않았다. “다만 말년이 편안하다고 자동으로 보장되는 사주는 아니다. 지금부터 5~10년 동안 무엇을 자산으로 남기느냐가 상당히 중요하다.” 알았어. 더 열심히 쓸게.

요즘 말년에 관해 자주 생각한다. 어디서 보낼까, 뭘 하며 살까. 예전에 경북 안동의 한 미술관에서 중국 사진작가의 전시를 본 적이 있다. 그는 작품 옆에 이렇게 써놓았다. “이 고장이 마음에 들어 1년 동안 머물며 작업했다.” 그 문장 앞에서 한참 서 있었다. 내가 보내고 싶은 말년이 딱 그랬다. 그런데 최근 그런 곳을 발견했다. 충남 당진의 면천이다. 우연히 갔다가 소박하고 다정한 마을 풍경에 반하고 말았다.

면천읍성 바로 옆에 있는 골정지. 최갑수 제공
면천읍성 바로 옆에 있는 골정지. 최갑수 제공

자전거포였던 책방

면천면 성안, 옛 객사터 맞은편에 책방 ‘오래된 미래’가 있다. 예전에는 자전거포였다고 한다. 책방지기 지은숙씨는 오랫동안 아이들 독서 지도를 하다가 작은 책방을 꿈꾸게 됐다. 전국의 작은 책방을 찾아다니던 끝에, 아이들을 데리고 역사 답사를 오가며 봐둔 이 마을의 빈 건물이 떠올랐다. 2019년에 문을 열었다. 이름 짓는 게 제일 어려웠다고 한다. 온갖 상호를 떠올렸는데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그러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책 ‘오래된 미래’에 닿았다. 오래된 마을, 오래된 건물, 오래된 책. 오래된 것들이 모여 미래를 열어보자는 뜻이다. 손님들은 간판을 보고 고개를 갸웃하며 들어왔다가 문을 여는 순간 이해한다고 했다. 나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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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가의 책은 전부 그가 골랐다. 좋아하는 책, 읽고 싶은 책, 추천받아 읽어보니 좋았던 책. 기준은 그게 다다. 특히 공을 들이는 건 어른을 위한 그림책이다. 소설도 많은데, 지금 읽어도 고전 같은 것들이다. 그림책 모임과 독서 모임이 꾸려지고 북토크와 아이들 체험 행사도 열린다. 2층에선 책을 산 사람이면 읽다 갈 수 있다. 공간을 따로 예약하면 1인 5천원에 2시간. 장사는 어떠냐고 물었다. “적자 없이 꾸려가는 것만으로 만족해요.” 책방 주인에게서 들을 수 있는 가장 건강한 대답이다. 재물운은 그다지 없지만 굶어 죽지는 않는다는 내 사주와 어딘가 닮은 것 같았다.

‘오래된 미래’ 실내. 최갑수 제공
‘오래된 미래’ 실내. 최갑수 제공
어수선해 보이지만 있을 건 다 있는 ‘진달래상회’. 최갑수 제공
어수선해 보이지만 있을 건 다 있는 ‘진달래상회’. 최갑수 제공

막걸릿집이었던 잡화점

책방 바로 옆이 ‘진달래상회’다. 서양화가 윤미경씨가 꾸리는 잡화점이다. 당진에 산 지 17년, 면천에서 15분 거리에 살면서도 이 마을을 몰랐단다. 8년 전 면천에 작은 미술관이 문을 열었고, 개관전을 보러 왔다가 그 인연으로 작품까지 걸게 됐다. 오가다 보니 옆 건물에서 책방 공사가 한창이었다. ‘나도 내 놀이터가 하나 있으면 좋겠다.’ 그 생각 하나로 빈집을 얻었다. 80년쯤 된 집이다. 오랫동안 할머니가 막걸리를 팔던 대폿집이었다. 처음 문을 열었을 땐 쓰레기가 쌓여 발 디딜 데가 없었다. 치우고, 페인트칠하고, 전기 공사를 했다. 서까래와 기둥은 그대로 뒀다. 코로나가 터지기 직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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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여행하며 모아둔 브로치며 장식품 몇개를 내다 팔았다. 물건은 금방 바닥났다. 대신 사람이 들어왔다. 책방에 들른 손님 하나가 말을 걸었다. “저희 어머니가 바느질을 하시는데요.” 여든의 이화정 선생님이다. 지금도 동대문에서 원단을 떼다 에코백을 짓는다. 면천에 놀러 왔다가 가게를 보고 샘플을 들고 찾아오는 공예 작가들도 있다. “저도 여기(잡화점) 넣고 싶어요.” 따로 모집한 적은 없다. 물건이 사람을 부르고, 사람이 물건을 데려왔다. 지난 8월8일로 만 7년이 됐다.

‘진달래상회’ 실내 풍경. 최갑수 제공
‘진달래상회’ 실내 풍경. 최갑수 제공

연암이 판 연못

두 가게를 나와 면천읍성을 걸었다. 충청남도의 기념물 제91호로 지정된 유적지다. 조선 세종 때 쌓은 돌성인데, 무너진 성벽은 지금도 조금씩 복원 중이다. 성안에는 1천년 넘게 살았다는 은행나무가 서 있다. 고려 개국공신이자 면천 복씨의 시조인 복지겸의 딸이 심었다는 그 나무다. 입장료도 없고, 천천히 걸어도 1시간이면 넉넉하다. 읍성 바로 곁에 골정지가 있다. 조선시대 만들어진 인공 호수다. 연암 박지원이 면천군수로 있을 때 논에 물을 대려고 판 연못이다. 가운데 작은 섬에 정자를 짓고 ‘건곤일초정’이라 이름 붙였다. 하늘과 땅 사이 초가 정자 하나라는 뜻이다. 일제강점기에 사라졌다가 2006년에 다시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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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이 면천에 온 건 예순 무렵이었다. 그는 여기서 농서 ‘과농소초’를 썼다. 말년에 작은 고을에 내려와 연못을 파고 책을 쓴 사람. 안동에서 본 그 문장이 다시 떠올랐다. “이 고장이 마음에 들어 1년 동안 머물며 작업했다.” 연암도 이 고장이 마음에 들었을까. 연못가 데크길을 한바퀴 돌며 그런 생각을 했다. 물어볼 수가 없으니 그랬을 거라고 마음대로 믿기로 했다. ‘오래된 미래’에서 ‘진달래상회’, 면천읍성을 거쳐 골정지까지. 나는 내 동네에 온 듯 익숙하게 걸었다.

의외로 웅장한 면천읍성 일대 풍경. 최갑수 제공
의외로 웅장한 면천읍성 일대 풍경. 최갑수 제공
서양화가 박기호, 설치미술가 구현숙 부부가 초등학교를 개조해 만든 아미미술관. 최갑수 제공
서양화가 박기호, 설치미술가 구현숙 부부가 초등학교를 개조해 만든 아미미술관. 최갑수 제공
서양화가 박기호, 설치미술가 구현숙 부부가 초등학교를 개조해 만든 아미미술관. 최갑수 제공
서양화가 박기호, 설치미술가 구현숙 부부가 초등학교를 개조해 만든 아미미술관. 최갑수 제공

면천에서 차로 조금만 가면 순성면 아미산 자락에 아미미술관이 있다. 1993년 문을 닫은 유동초등학교를 서양화가 박기호, 설치미술가 구현숙 부부가 가꿔 미술관으로 만들었다. 교실은 전시실이 됐고, 운동장엔 부부가 심은 나무와 꽃이 무성하다.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풍경이 미술관의 일부가 됐다. 나는 교실과 교실을 옮겨다니며 작품들을 보았다. 면천에서 본 것들은 모두 오래된 것들이었다. 자전거포였던 책방, 막걸릿집이었던 잡화점, 조선의 성벽, 연암이 판 연못, 아이들이 떠난 학교. 누구도 허물고 새로 짓지 않았다. 닦고, 고치고, 다르게 쓰기로 했을 뿐이다. 언젠가 정말 마음에 드는 곳에서 1년쯤 살아볼 수 있다면, 나는 면천을 떠올리지 않을까. 나도 면천 어느 집을 고쳐 살며 이렇게 적을 수 있으면 좋겠다. “이 고장이 마음에 들어 머물며 썼다.”

‘에이스식당’의 콩국수는 고소한 맛으로 손님을 끈다. 최갑수 제공
‘에이스식당’의 콩국수는 고소한 맛으로 손님을 끈다. 최갑수 제공

B급 음식

면천읍성 주위에 콩국숫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이곳에서 난 콩을 곱게 갈아 만든 콩물은 진하고 걸쭉하지만 텁텁하지 않다. 집집마다 쑥이나 부추를 넣어 면의 향과 색을 달리하고, 쫀득한 면발 위에는 열무김치와 고추장아찌가 곁들여진다. 초원콩국수, 김가면옥, 옛날그집, 면천콩국수 등이 보인다. 나는 에이스식당에 들어가서 먹었다. 간판도 건물도 허름한데 점심때면 줄을 선다. 메뉴는 쑥콩국수 딱 하나. 쑥을 넣어 반죽한 면에 연둣빛이 돈다. 콩물은 서리태를 비롯한 콩 세가지를 갈아 만든다고 한다. 걸쭉하고 고소한데 텁텁하지 않다. 면을 씹을 때마다 쑥향이 콧속으로 슬쩍 올라온다. 반찬은 열무김치가 전부인데, 그거면 충분하다. 콩국수 한젓가락에 열무김치 한젓가락. 여름이 이렇게 간단하게 해결된다.

면천읍성 근처에 있는 콩국수 파는 집 ‘초원콩국수’. 최갑수 제공
면천읍성 근처에 있는 콩국수 파는 집 ‘초원콩국수’. 최갑수 제공
‘장춘닭개장’의 닭개장. 최갑수 제공
‘장춘닭개장’의 닭개장. 최갑수 제공

당진 시내로 나가면 장춘닭개장이 있다. 메뉴가 닭개장 딱 하나다. 자리에 앉으면 주문도 받지 않고 사람 수대로 닭개장이 나온다. 먼저 커다란 스테인리스 대접 2개가 놓이는데, 하나는 백김치, 하나는 무짠지다(여름엔 백김치 대신 열무김치가 나온다). 뚝배기 안에는 손으로 찢은 닭살코기가 넉넉하고 숙주와 대파가 푸짐하다. 국물은 칼칼한데 자극적이지 않다. 뜨거운 국물 한숟가락에 시원한 백김치 한조각. 아침부터 줄 서는 이유를 알겠다. 해장할 일이 자주 있는 분이라면 기억해두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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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정지를 한바퀴 돌았다면 면천창고에서 커피를 마시면 된다. 1970년대 옛 농협창고를 리모델링해 만든 창고형 복합문화공간이자 카페다. 창고였던 만큼 층고가 높고 테이블 간격이 넉넉하다. 날이 좋으면 마당의 캠핑 의자에 앉아도 좋다. 커피를 비롯해 전통 재료를 활용한 음료를 판다. 미숫가루크림커피, 인절미오트라테, 인절미아인슈페너, 아이스크림라테, 크림모카, 스트로베리블라섬 등이 대표 메뉴다. 디저트로는 쑥인절미티라미수와 소금빵이 잘 팔린다.

아미미술관 가까운 곳에 있는 카페아미루트는 대형 통유리로 들어오는 햇살이 좋은 카페다. 베이커리 종류가 많고 조용한 분위기다. 미술관과 함께 코스를 짜면 느긋한 가을을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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