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인데 떨려서 말을 잘 못해요”…‘떨림’도 나의 일부 [.txt]
평생 지속된 ‘수줍음과 떨림’ 고민에
진짜 내 마음이 뭔지 들여다보기 제안
“떨리는 채로 일단 모임에 가보시죠”
요조의 요즘 무사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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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제 지금부터 사연자님을 ‘비브라토’님이라고 불러볼까 해요. 사연에 ‘도돌이표’라는 음악 용어를 써주셔서 저도 모르게 바로 비브라토를 떠올리고 말았습니다. 노래를 부르거나 악기를 켤 때 음을 미세하게 떨어 울림을 만드는 것을 말하는 이 단어가 사연자님의 고민과 맞닿아 있다고 여겨졌어요.
비브라토님의 사연은 여러모로 궁금해지는 글이었습니다. 그 궁금증을 간단하게 줄여보자면 이렇습니다. 이 사연을 적게 한 마음은 욕망에 가까울까, 의무감에 가까울까. 50대 중반이라면 자기의 못마땅한 고질적인 부분을 어떻게든 고쳐보려고 노력하기보다 어쩔 수 없이 체념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나이에 가깝다고 저는 짐작합니다. 어릴 때부터 수줍음이 많아 평생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 어려움을 느껴오신 비브라토님께서 아직도 이를 체념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제게 조언을 구하신 것은 끝까지 사라지지 않는 어떤 욕망이 있어서일 것입니다. 대개 두려움이 가장 강하게 몰리는 자리가 또한 욕망이 가장 강하게 몰리는 자리이기도 하니까요. 저는 지금도 제가 공연을 망치는 악몽을 무척 자주 꿉니다. 저는 무대에서 가장 훌륭해지고 싶고, 그래서 무대가 가장 두렵습니다. 비브라토님도 그런가요? 맞다면 어떤 욕망이 있습니까. 사랑받고 싶은 욕망? 자기 목소리를 갖고 싶다는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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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욕망 때문이 아니라면 이 고민은 의무감 때문에 하고 계시는 걸까요? 다시 말해 직장 때문에, 혹은 세상이 말하는 소위 나이 든 사람이라면 이래야 한다는 기준 때문에 억지로 바뀌어야 한다고 느끼신 것일까요?
저는 이 사연만 봐서는 비브라토님의 마음을 분명하게 알기가 어려운데요. 혹시 비브라토님 역시 스스로의 마음이 또렷하게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면, 나를 공부하는 시간을 제안해보고 싶습니다. 길잡이가 될 만한 좋은 소설이 절판되었다가 마침 최근 재출간되었습니다. 에두아르 르베의 ‘자화상’(은행나무·2026)입니다. 대부분의 문장이 ‘나는’으로 시작하고, 앞 문장과 뒤 문장이 이어지지 않습니다. 이 이상한 책을 저는 정말 좋아합니다. 지금 바로 아무 문단이나 뚝 떼어 옮겨보겠습니다.
“나는 내가 행복한 것에 행복하며 슬픈 것에 슬프지만, 또한 슬픈 것에 행복하고 행복한 것에 슬플 수도 있다. 수면 부족은 비가 올 때보다는 화창한 날에 나를 더 괴롭힌다. 나는 어떤 순간에 상관없이 누군가가 아름답다고 생각하지만 항상 나 자신이 잘생겼다고 생각지 않으며, 그에 따라 나는 아름답지 않다.”
이 책은 두가지 관점에서 유용합니다. 첫째로 산발적인 문장들을 읽어가며 나는 어떠한가, 하고 비교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저 문장들을 자신의 버전으로 어렵지 않게 흉내 낼 수 있습니다. 저는 비브라토님이 이 두 관점을 적절히 활용해 자신을 즐거이 들여다보셨으면 합니다. 비브라토는 ‘떨리는’이라는 뜻일 뿐, 좋다 나쁘다는 판단이 들어 있지 않은 단어입니다. 부디 스스로의 떨림에 붙여두신 여러 판단들―결함, 미달, 못마땅함―같은 것들은 공부를 시작하기 전 멀리 던져버리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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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명륜동에서,
요조를 열심히 공부 중인 요조 드림
추신. 공부는 방에서 하시되, 모임엔 일단 가보시죠. 원래 모임에는 떨면서 가는 겁니다. 제가 지금도 떨면서 무대에 오르듯 말입니다.
※당신의 고민을 들려주세요. 요조가 ‘책 처방’을 해드립니다. 제목에 ‘요조’를 달아 txt@hani.co.kr로 보내주세요.
KioskNews shows a cleaned-up reading view extracted from the publisher’s page — the original always lives on their site, not ou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