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 조절, 무작정 참기가 답이 아니다…화에 휩쓸리지 않는 법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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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정님도 분노 조절을 화를 느끼지 않거나 화가 나도 끝까지 참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화를 내는 게 병일까 봐 경계하고, 화가 계속 새어나가면 사회적으로 매장당할 거라 걱정하는 데에는 분노가 그 자체로 위험하다는 전제가 숨어 있습니다.
영화관에서의 역설적인 일화도 분노를 금기시하는 것과 관련이 있을 것 같습니다. 친구는 상대가 이상한 사람이라 해를 입으면 어떡하나 걱정했지만 해정님에게는 그런 위험이 별로 브레이크가 되지 않았습니다. 어떤 면에서 친구보다 더 대담했던 셈입니다. 반면 ‘의자를 자꾸 발로 차서 불편하니 조심해 달라’고 말하는 것은 어려웠습니다. 어쩌면 불편함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의자를 팔꿈치로 치며 공격적으로 행동하는 것보다 더 위험하게 느껴졌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발휘하는 방향이 조금 어긋나 버린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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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정님에게 불편하다고 말하는 것이 왜 이토록 어려운 일이 되었을지 생각해 봤습니다. 짐작건대 해정님에게는 가까운 관계에서 불편함이나 힘든 마음을 드러내는 일이 꽤 낯설고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해정님은 부모님에게 빚진 기분을 느끼고 있습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용돈을 받는 자신을 식충이라고 자학하고 빨리 돈을 벌어 받은 것을 갚고 싶어 합니다. 너무 많은 걸 받은 것 같은 부채감이 있으면 불만을 쉽게 가질 수 없습니다. 받은 사람이 불평까지 하면 염치없는 사람이 될 테니까요.
자기 비난이 이미 강하니 엄마의 잔소리도 더 쓰릴 것 같습니다. “언제까지 방을 치워줘야 하느냐”는 말은 해정님이 스스로에게 매일 하는 ‘언제까지 부모에게 붙어 있을 거냐’는 말을 엄마의 목소리로 다시 들은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내가 언제 해달라고 했냐”는 짜증은 “나도 내가 의존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고 그 사실이 못 견디게 괴로우니 더 일깨우지 마”라는 외침으로 들리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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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에게 느끼는 짜증도 부러움과 박탈감이 뒤섞인 감정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친구들의 경제적 여유도 부럽겠지만, 부모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빚진 기분에 짓눌리지 않은 자유로운 모습이 더 부러울 것 같습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해정님을 화나게 한 뒷자리 아이는 해정님이 편하게 누려보지 못한 모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부모의 보호를 받으면서 자신이 누군가에게 폐가 되거나 짐이 될 수 있다는 걱정에 붙잡히지 않은 아이의 모습이요. 아이를 향한 짜증에는 ‘난 저렇게 있어 본 적이 없는데’ 하는 박탈감도 섞여 있을 수 있습니다.
해정님이 감정에 대한 통제력을 잃은 것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보다는 여러 복잡한 감정이 뒤엉켜 화로 올라오면서 통제력을 잃을까 봐 두려워하는 상태로 보입니다. 분노를 잘 조절한다는 것은 더 오래, 더 많이 참는 것이 아닙니다. 화를 없애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보다 화에 휩쓸리지 않으면서 화를 볼 수 있는 것에 가깝습니다.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 들여다보고 그 크기와 상황에 맞게 어떻게 화를 다룰지 선택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정중하게 표현할 수도 있고 필요하면 단호하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적당히 거리를 두거나 내 안에서 소화해 볼 수도 있습니다. 폭발과 억압 사이에서 더 많은 선택지를 유연하게 고를 수 있을 때 분노 조절이 한결 수월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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