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한채 600만원 이곳서 흔적없이 살다간다…은거 택한 청년들 [Book]

열심히 살면 삶이 나아진다는 믿음은 사회를 움직이는 강력한 엔진이었다. 나태와 게으름은 ‘더 나은 삶’이란 보상과 연결되지 못하므로 우리는 ‘해야 한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는 신념을 스스로에게 주입하며 하루를 견뎠다. 묵묵히 이 길을 걸으면 내 삶이 달라지리라는 확신. 그래서 좋은 대학을 다니고 좋은 직장을 얻고 돈을 모아 집을 산 뒤 결혼·출산으로 이어지는 삶이 ‘정상’ 모델로 여겨지곤 했다.
그런데 만약 밤낮없이 일해도 집을 살 수 없고, 코피 쏟으며 매진해도 직장을 얻을 수 없으며, 이 때문에 ‘계층 사다리’를 오를 수 없다면 그건 희망을 가장한 사기극이 아닐까.
스스로 ‘트랙’에서 벗어나기로 결정한 사람들을 조명하는 신간 ‘탈주자들’이 출간됐다. 중국 이야기지만 단순한 옆나라 얘기처럼 느껴지지 않는 책이다. 스스로 은둔을 택한 사람들, ‘믿을 만한 꿈’을 삭제당한 사람들. 이유는 뭘까.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출퇴근길을 오가며 온라인 커뮤니티의 ‘은거바(隐居吧)’를 유심히 살폈다. 은둔자, 도피자 그리고 ‘탕핑족(躺平族)’이 모여 글을 남기는 곳이었다. 대개 20대, 많게는 50세인 66만명이 700만개의 게시물을 은거바에 올리며 자신들의 선택을 강변 중이었다. 참고로 탕핑족이란 ‘미래가 보이지 않은 삶에 좌절해 경제활동을 피하고, 생계를 위한 최소한의 활동만 하면서 지내는 게 현명하다고 생각해 이를 실행하는 중국 젊은이들’을 뜻하는 용어라고 한다.
역사적으로 대개 ‘은둔자’라 하면 셋 중 하나였다. 현실세계를 증오해 속세를 등지거나, 영적 깨달음을 추구하거나, 예술적 자유를 위해 혼자 머물 곳을 찾는 경우였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가 보기에 은거바에서 은밀히 활동 중인 이들은 좀 달랐다. 그들은 어떤 신념 때문이 아니라 비루한 현실 때문에 도시를 등진 사람들이었다. 드넓은 중국 땅에서 그들이 주목한 곳은 러시아 국경과 인접한 낡은 탄광도시 ‘허강’이었다. 그들은 집값이 싼 허강에 모여 세상의 여백에 가까운 삶을 살고 있었다.
삶의 기이한 풍경을 채집하기 위해 저자는 아예 허강으로 이사를 간다. 허물어져 가는 도시에서 저자가 확인한 은둔자들의 모습은 이랬다.
우선 3만~4만위안짜리 집을 산다. 우리나라 돈으로 650만~850만원 정도이니, 도심 베이징의 1㎡ 땅값으로 집 한 채를 사는 셈이었다. 외딴 도시 허강엔 1㎡당 350위안, 즉 7만원대 매물도 흔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셈하면, 한국 기준 전용면적 59㎡ 구축 아파트 한 채가 허강에선 450만원, 84㎡라면 640만원 수준이란 계산이 나온다.) 그들은 집을 구매한 뒤 남은 돈으로 생활했는데,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아니다. 삶을 포기한 것도, 그렇다고 어떤 욕망을 품은 이들도 아니다. 월수입 1000위안(20만원), 하루 생활비 20위안(4000원)으로 산다.
도시로부터 ‘강렬한 피곤함’을 느껴 이곳으로 도피한 것. 그들에게 노동 의지는 없었다.
허강으로 이사한 사람들의 생활 패턴도 놀랄 만큼 단순했다. 한 남성의 사례가 책에서 비중 있게 다뤄진다. 새벽녘에 잠들어 오후에 기상하고, 식사는 하루 한 끼로 때운다. 또 맥주 한 병과 반찬을 사온 뒤 TV를 켜고 그런 일상을 하루 단위로 반복한다. 그렇게 몇 달 동안 살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다른 남성의 사연은 더 처연하다. 고교 졸업 후 5년간 시내버스 기사였던 그는 전력회사 사장의 비서로 10년간 일하다가 회사가 폐업하자 고향으로 간다. “화장실에서 토할 때까지 마신 뒤 다시 자리에 돌아와 술잔을 받아야 했고, 상사의 비위를 맞추려고 굽실거리던” 삶에 환멸을 느끼던 그는 결혼까지 3년 만에 끝나자 도시를 버린 뒤였다. 또 다른 남성은 직장을 잃고 5년간 누구와도 만나지 않고 대화도 나누지 않으며 살고 있다. 19층 임대아파트, 불투명 시트지로 가린 창문은 바깥 풍경을 전혀 비추지 않는다.
저자가 발견한 은거바의 한 게시글은 ‘도약’과 ‘절망’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이들을 거울처럼 비춘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 것은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그런 일은 인생을 살아갈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지요. 저 같은 사람은 조금 심하게 말하면 폐인이에요. 사회에 창조적인 가치 창출을 못하는 사회적 쓰레기나 마찬가지죠. 저 같은 사람은 사회의 자원을 낭비해서는 안 돼요.” 이 책 ‘탈주자들’은 단지 해외 외딴 도시의 이야기로만 읽히지 않는 서늘함이 있다.
한국 사회에서도 ‘정상성’을 획득하기 위한 경로는 점차 가팔라지고 있다. 사회 초년생이 대출 없이 집을 산다는 건 판타지 소설의 소재로나 나올 법한 일이다. ‘평범’하게 사는 게 실은 얼마나 ‘비범’한 일인지를 우리는 주변에서 실시간으로 목격 중이다.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청년들의 비루한 현실 앞에서 “왜 더 노력하지 않았느냐”고 따져 묻는 이도 없다. 그건 무례를 넘어 모욕에 가까운 언사인 세상이다. 그 지점에서 저자는 현대사회가 던진 질문을 회수하고 다른 각도에서 질문한다. ‘사람들이 꿈을 포기한 게 아니라, 우리 사회가 더 이상 믿어볼 만한 꿈을 내놓지 못하게 된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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