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용병 후속] ⑨ 랭킹에 휘청이는 '상아탑'…대학의 본질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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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이의진 양수연 기자 = 국내 대학들이 외국 다작 학자들을 강의나 공동연구 등 실질적 협업 없이 세계대학평가 순위를 끌어올리는 데 동원했다는 '학술용병' 의혹은 오늘날 학계가 처한 딜레마를 수면 위로 드러냈다.
이들의 교원 자격이 적절하냐는 논란 이면에는 '대학랭킹' 중심으로 학계가 재편되는 흐름 속 아카데미즘 본질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 깔려있다.
19일 연합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대학 본부·연구처 관계자들은 '국제교류 증진' 필요성을 강조하며 이에 발맞춰 교원 임용 방식을 다변화한 결과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본부·연구처 밖 비보직 교수들은 대학이 랭킹 위주 질서에 휘말려 학문의 본질이 뒷전으로 밀리고, 나아가 학술 생태계를 교란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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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최자윤, 정연주] 일러스트
◇ 외국 다작교수 영입 명분은 '세계화'…현장은 "참담함"
"수준 높은 연구실적, 스스로의 연구 능력을 기르는 것만이 학계에 자리 잡는 방법이라고 믿고 최선을 다하고 있는 학생들을 볼 때마다 참담함을 금치 못합니다."
최근 한 대학 교수는 연합뉴스 취재진에 "해당 문제에 대해 꾸준히 보도를 해줘서 감사하다"며 이러한 심정을 담은 이메일을 보내왔다.
이 교수는 "학계에 속한 사람이기에 앞서 한 명의 납세자로서 대체로 세금을 바탕으로 운영되는 연구 분야 문제가 이렇게까지 음지에서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점에 대해 너무나도 비참한 마음"이라고 적었다.
이어 "대부분 사람은 대학교수 본업이 무엇인지, 학계가 어떤 곳인지, 연구비가 어떻게 융통되는지 관련 정보가 지나치게 제한돼 관련 이야기를 풀어나가기가 너무 힘들다"며 "혼자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 큰 좌절감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이러한 현장 연구자들의 손가락질에도 대학들이 막대한 자금을 들여가며 내세우는 명분은 하나같이 '연구 세계화'다.
외국 우수 연구자와 협업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2017년 '연세 프론티어 랩'(YFL)이 주요 대학이 최초 시도한 모델로 지목된다.
2022년까지 일부 외국 학자가 연세대 소속으로 논문을 내고 인센티브를 챙겼다.
연세대는 연구윤리상 문제를 인지하고 이 같은 인센티브 우선책을 철회했으나 전략 골자는 고려대의 'K-클럽' 등으로 이어졌다는 게 대학가 평가다.
고려대는 이를 기후 위기 등 개별 대학이 감당할 수 없는 지구적 난제 해결 연구 네트워크로 소개하며 180명이 넘는 다작·고인용 학자를 2023년부터 비전임교원으로 영입했다.
YFL보다 영입 규모를 대폭 늘리되, YFL의 미비점으로 지적된 실질적인 연구 교류를 보강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하지만 세계적 네트워크를 꾸리려면 학문의 본질과는 '미묘한 줄타기'를 하며 논문 인센티브 등으로 유인책을 내걸어야 하는데, 이에 대한 회의적 의견이 기획 단계부터 나왔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랭킹으로 인한 전 세계 각 대학의 지표 경쟁이 심화하면서 우수 연구자들 몸값이 치솟았던 현실도 반영됐다.
석학들을 국내 상주시키며 기관 연구 역량 강화를 꾀하려면 천문학적인 비용이 드는 만큼, 고용관계를 느슨하고 유연하게 하는 '고육책'이 고안됐다.
국내 체류·대면 강의·학사 행정 참여를 면제하면서 몇 차례 원격 연구 교류에 그쳐도 정식 임용 절차를 거쳐 교원으로서 자격을 인정해주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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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자료사진]
◇ 양적 지표 끌어올리면 '좋은 대학의 좋은 연구'인가
학자들은 적은 부담으로 국내 명문대 '타이틀' 이력을 추가하고, 이들을 영입한 대학도 '양적 지표 개선'이라는 당장의 이득을 얻는다.
이들 학자군은 매년 논문을 수십편 내는 초다작 저자로, 통상 인용도도 높아 QS·THE 등 평가에 반영되는 양적 지표가 단기간 내 개선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이들 연구의 대부분이 제3국 학자와의 협업이라 최근 랭킹의 핵심으로 꼽히는 '국제 공동연구 지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그러나 공언한 만큼의 실질적 학술교류가 불발되면 이들은 사실상 자교 성과로 포섭될 연구물을 양산하는 수준의 '외부 용역'에 그치게 된다.
학술 교류로 세계적 연구가 나타날 가능성을 보고 이 과정에서 수반되는 문제점은 안고 가는 구조로, 건강한 학술 생태계 조성보다는 연구 네트워크 성과의 장기적 가능성에 중점을 둔 것이다.
최근 국내 대학들이 글로벌 대형연구를 강조하는 건 이처럼 학계 평판을 크게 올리는 '한방'이 될 수 있어서다.
아울러 '좋은 연구' 기준이 계량적 지표로 환산되는 흐름과도 연관된다.
연구물이 많이 인용되려면 국내와는 차원이 다른 규모의 글로벌 학계를 노린 전략이 필요하다는 현실론이 외부 학자를 대거 영입하는 연구 네트워크 추진의 배경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서울의 한 사립대 연구부총장은 "국내 교수들도 상위 저널에 좋은 논문을 많이 내는데 피인용 수는 나오지 않는다"며 "연구 자체보다 그걸 세계에 알리는 플랫폼이 중요해졌다"고 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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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지 제작] 일러스트
◇ 랭킹질서 속 압박…"대학랭킹, 연구발전 지표가 되기엔 한계"
대학들은 랭킹 순위를 올리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생존 압박'을 느낀다고 한다.
연구비 지원이나 해외 유학생 유치 등 재정적 명운이 결국 순위로 요약되는 정량 실적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글로벌 평가기관이 요구하는 '좋은 대학'의 기준이 진정한 아카데미즘에 부합하는지 돌아보는지 성찰은 흐려져 간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부 연구자는 이번 의혹이 랭킹 중심으로 재편되는 연구 생태계의 '교란 증상'이라는 비판적 진단을 내놓았다.
전국교수노동조합 부위원장을 맡았던 김명환 서울대 영어영문학과 명예교수는 최근 논평을 내고 "QS 랭킹이 우리 대학의 연구·교육 발전의 지표가 되기엔 본질적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랭킹 향상을 목표로 두고 벌이는 실적 경쟁에서 학술용병 등 '부작용'이 심화하고 있다고 진단한 김 교수는 "이 모든 것이 대학의 자율성을 그 뿌리로부터 야금야금 파먹게 된다"고 지적했다.
평가기관의 '줄 세우기' 기준에 맞추려 대학이 자율성을 스스로 반납하고 실적만을 좇는다는 일침이다.
실제로 네덜란드 명문 위트레흐트대는 이 같은 문제의식에서 2023년부터 THE 랭킹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당시 국내 대학 중 최고 순위는 서울대(56위)로 이와 비슷한 수준으로 평가된 대학이 '보이콧'을 선언한 것이다.
랭킹 산정에 주로 활용되는 지표들은 연구가 사회에서 어떻게 활용되고 공공생활 증진에 이바지하는지 등 연구의 질적 측면을 담보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대학이 천편일률적인 평가 잣대에 순응해 각 사회의 다양한 요구에 응답하지 못하고 점차 '본질'을 잃어가는 게 아닌지 학계의 자성을 보이는 사례로 평가된다.
seele@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6년10월19일 08시00분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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