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경력 못 채우는 ‘0년차 청년’…탐색하고 실패해도 다시 설 기회를 [아시아미래포럼]
한겨레가 주최하는 제17회 아시아미래포럼이 28일 오전 8시15분부터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격변의 시대, 리딩국가로 가는 길’ 주제로 열린다. 국제 질서 변동과 인공지능 전환이 겹치는 격변 속에서 공동체 공존을 위한 한국의 길을 모색한다. 오후 세션 토론(‘청년 노동, 무엇이 달라져야 하는가’) 좌장을 맡은 변금선 서울연구원 인구변화대응연구센터장의 글을 포럼 기획의 마지막 순서로 싣는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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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는 성장, 청년 취업은 47개월째 감소
첫 취업까지 11.2개월…조기취업률 하락
청년 일자리 최근 4년간 28만5천개 줄어
감소분 대부분 AI 고노출 업종에 집중
표준 밖 청년의 일도 노동으로 존중을
신입 키우는 기업에 사회적 지원·보상을
정책 논의에 청년이 당사자로 참여해야
청년 일 보장이 사회대협약의 출발점
지난 8일 삼성전자는 2026년 3분기 매출 195조원, 영업이익 107조4천억원이라는 사상 최대 분기 잠정실적을 발표했다. 한국은행도 최근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6%에서 3.3%로 높였다. 9월 전체 취업자는 1년 전보다 11만3천명 늘었다. 그러나 같은 달 15~29살 청년 취업자는 14만7천명 줄었고, 청년고용률은 45.1%에서 44.0%로 떨어졌다. 청년 취업자 감소는 47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경제와 기업은 성장하는데 청년의 고용 현실은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
어딘가 익숙한 풍경이다. 20여년 전으로 시계를 돌려보자. 2000년대 초반에도 ‘고용 없는 성장’이 화두였다. 2003년 경제는 3.1% 성장했지만 취업자는 오히려 약 3만명 줄었다. 당시에는 청년이 중소기업을 기피하거나 기업이 원하는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진단이 많았다. 청년실업해소특별법을 제정하고 여러 고용대책을 추진했지만, 15~29살 청년고용률은 2004년 45.4%에서 2010년 40.4%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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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즈음부터 한국 사회는 청년문제에 주목하고 대책을 마련했다. 2020년 청년기본법을 제정하고, 매년 청년정책에 20조원 이상의 예산을 투자했다. 하지만 지금도 청년고용은 해결하지 못한 과제다. 국가데이터처 경제활동인구조사 청년층 부가조사에 따르면, 학교를 졸업하거나 중퇴한 15~29살 청년이 첫 일자리를 얻기까지 걸린 기간은 2010년 10개월에서 2026년 11.2개월로 늘어났고, 3개월 이내에 취업한 조기취업률은 52.6%에서 47.1%로 줄었다. 10명 중 3명은 첫 취업까지 1년 이상이 걸린다. 그 시간을 버티는 과정에서 청년 간 격차도 커졌다. 취업을 미루고 준비할 시간이 있는 청년과 당장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터로 나가야 하는 청년의 출발선 차이는 이후 삶의 격차로 이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청년은 더 큰 변화를 마주하고 있다. 바로 인공지능(AI)이다. 기존의 청년 노동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인공지능은 청년이 일하는 방식을 바꾸고 일할 기회, 곧 첫 출발선까지 위협하고 있다. 2022년 말 ‘생성형 인공지능’이 대중화된 지 불과 몇 년 만에 자료조사, 서류 초안 작성, 코딩, 회계자료 검토와 고객 응대까지 인공지능이 맡기 시작했다. 기업에는 반가운 변화지만, 청년에게는 무서운 경쟁자가 등장한 셈이다. ‘배틀그라운드’를 만든 게임회사인 크래프톤은 ‘인공지능 퍼스트(AI First)’로 전환하고 채용 과정에서도 지원자가 인공지능과 협업하는 능력을 평가하기 시작했다. 직무별로 인공지능 대체가능성을 점검하기 전까지 신입공채를 전면 중단했다는 대기업의 소식도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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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은 인공지능이 바꾸는 노동의 최전선에 서 있다. 한국은행의 2026년 분석에 따르면 최근 4년간 15~29살 청년 일자리는 28만5천개 감소했고, 이 가운데 26만8천개가 인공지능 노출도가 높은 업종에서 줄었다. 청년은 ‘88만원 세대’, ‘엔(N)포세대’로 불려왔는데 이제는 인공지능과 경쟁하면서 경력의 첫 줄을 채우기 어려운 ‘0년차 세대’가 되고 있다.
기업들은 인공지능이 등장하기 전부터 신입을 뽑아 가르치기보다 당장 일할 수 있는 경력자를 선호했다. 그런데 인공지능은 그나마 남아 있던, 청년이 처음 일을 배우던 업무까지 대체하고 있다. 노동시장 진입이 늦어지고 청년세대 내 격차가 벌어지는 것이 문제였다면, 이제는 경력의 첫 칸을 채울 기회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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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시대, 청년의 일할 권리를 어떻게 보장할지에 관한 사회대협약이 필요하다. 큰 사회경제적 변화가 있을 때마다 우리 사회는 국가와 기업, 노동자, 국민이 함께 새로운 제도와 안전망을 만들어 왔다. 논의는 이미 시작됐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9월 노사와 청년, 미조직 노동자,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인공지능 시대 새로운 사회계약을 위한 녹서 논의체’를 출범시켰다. 이제 중요한 것은 그 약속을 구체적으로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이다. 탐색하고 실패할 시간, 경험할 기회, 변화를 주도할 목소리를 보장해야 한다.
첫 번째 출발점은 ‘졸업하면 취업하는 것’이 이제 표준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일자리가 줄고, 한 번 구한 일자리가 평생을 보장하지도 않는다. 앞으로 청년은 자신의 적성을 탐색하고, 직무를 바꾸고, 때로는 실패하는 과정을 여러 차례 거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사회가 보장해야 할 것은 한 번의 성공적인 취업이 아니라, 탐색하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기회와 시간이다.
현재 국민취업지원제도 등 미취업 청년을 위한 사업의 지원 기간은 일반적으로 최대 6개월이다. 첫 일자리를 얻기까지 평균 11개월 넘게 걸리고 취업 이후에도 이직을 경험하는 청년의 현실에 충분한 지원인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누구나 언제든 유연하게 새로운 일을 탐색하고 경험하고 도전할 권리를 보장하는 ‘성장계좌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생애 언제든 쓸 수 있는 3년의 시간을 보장하고, 생활비와 배울 기회, 경험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개인의 여건에 상관없이 변화에 적응할 시간, 일할 기회를 보장하는 안전망이 필요하다.
이는 청년이 일하고 사회구성원이 돼가는 모습이 하나가 아님을 받아들이는 일이기도 하다. 그동안 청년정책은 대학을 졸업하고 기업에 취업하는 길을 사실상 기준으로 삼았다. 그러나 청년은 이미 다양한 방식으로 일하고 있다. 플랫폼을 기반으로 프리랜서 등으로 일하는 청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일터에 나가는 청년, 그리고 지역에서 제조업에 종사하거나 창업에 도전하는 청년도 있다. 우리 사회가 그려 온 청년노동의 표준에서 벗어났다는 이유로 이들의 일은 제대로 보지 않았고, 그들이 일하는 여건도 그만큼 열악했다. 청년의 일이 어떤 형태이든 노동으로 존중받고 그 여건이 나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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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도 빠질 수 없다. 경력자는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모든 기업이 경력자만 채용한다면 그 경력자들이 떠난 빈자리는 누가 채울 것인가. 인공지능으로 높아지는 생산성과 그로 인해 창출되는 이익 일부는 새로운 세대가 일을 배우고 경험을 쌓을 기회를 만드는 데 돌아가야 한다. 정부가 추진하는 대학생 첫경력 프로젝트와 프리랜서 등을 위한 경력인정제인 커리어뱅크도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경력직만 채용하던 일자리에도 신입이 멘토링과 현장학습을 통해 진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신입을 키우고 가르치는 기업에는 사회적 지원과 보상이 뒤따라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논의에 청년이 당사자로 참여해야 한다. 어떤 일자리가 줄고 새로 생길지, 높아진 생산성의 성과를 어떻게 나눌지를 기업뿐 아니라 정부와 당사자인 청년이 머리를 맞대고 결정해야 한다. 지금 일하는 사람뿐 아니라 앞으로 일하게 될 청년, 그리고 플랫폼 노동, 10대부터 일을 시작하는 청소년 노동자, 지역 현장에서 일을 시작하는 노동자 등 ‘좋은 일자리’와 ‘표준적 경로’에 가려져 있던 청년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인공지능 시대에 한국은 다시 한번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이 한국의 치킨집을 찾고,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장면까지 화제가 됐다. 인공지능 강국 한국에 비춰진 화려한 조명 아래, ‘0년차’에 멈춰 선 청년은 어디에 있는가? 청년이 성장할 기회, 일할 기회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 답을 찾아야 한다. 인간에게 일은 생계를 위한 수단만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위한 기반이다. 청년의 일을 보장하는 것은 결국 우리가 살아갈 미래를 지키고 바꾸는 일이다. 그 답을 함께 찾는 것이 새로운 사회대협약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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