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4분’, 한국은 ‘18분’…전기차 충전 속도전, 이젠 전력망 싸움
지리의 초고속 충전용 스마트 충전 스테이션에서 전기차가 충전을 하고 있다. 지리 홈페이지 갈무리
‘단 4분30초.’ 지난달 23일 중국 저장성 닝보에서 열린 지리자동차의 새 충전시스템 발표회에서 나온 숫자다. 배터리 잔량 10%에서 70%까지 채우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지난 3월 경쟁사 BYD가 공개한 ‘10→70%’ 충전시간 5분보다 30초 짧다. 그런데 이날 행사장에서 로이터와 만난 장더왕 지리 임원의 말은 의외였다. 그는 “충전 속도가 이미 물리적 한계에 근접했다”고 말했다. 앞으로 더 빨라져도 얻는 이득은 갈수록 작아진다는 얘기다. 기록을 깬 회사가 스스로 ‘한계’를 꺼낸 셈이다.
중국 전기차 업계는 지금 충전시간을 ‘분’이 아니라 ‘초’ 단위로 다툰다. 지리의 새 충전기는 커넥터 1개당 최대 2250㎾(킬로와트)를 낸다. 97%까지는 8분40초가 걸린다. BYD의 1500㎾급 ‘플래시 충전’은 97%까지 9분이다. 중국 배터리업체 CATL은 3세대 ‘선싱’ 배터리로 10%에서 80%까지 3분44초를 내세웠다. 미국·유럽 등 주요 시장의 최신 전기차가 10%에서 80%까지 18~40분 안팎이 걸리는 것과 비교하면 격차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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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전의 배경에는 중국 전기차 시장의 성장세 둔화가 있다. BYD의 9월 글로벌 판매는 46만3561대로 전년보다 17% 늘었지만 해외 판매가 153.6% 증가했다. 중국 내 판매는 28만2861대로 13% 감소했다. 1~9월 내수 누적은 30% 줄었다. 가격 인하와 주행거리 경쟁으로는 지갑을 열기 어려워지자 ‘얼마나 빨리 다시 달리느냐’를 새 무기로 꺼낸 것이다.
인프라 확장도 빠르다. BYD 플래시 충전소는 9월 기준 341개 도시 1만1586곳이다. 지난달 24일엔 2000번째 고속도로 충전소를 열어 베이징~상하이 고속도로 전 구간을 메가와트 충전으로 이었다. 고속도로 충전소 간격은 평균 100㎞를 조금 웃돈다. 경부고속도로로 치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3~4곳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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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4분 충전’이 공짜가 아니라는 점이다. 충전기 한 대가 최대 2.25㎿(메가와트)를 끌어온다. 주택용 계약전력 3㎾로 단순 계산하면 750가구분이다. 여러 대가 동시에 돌면 부담은 더 커진다. S&P글로벌은 중국 공공 충전소 대부분이 아직 1㎿에 못 미쳐 메가와트급 충전 성능을 온전히 쓰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업체들이 충전소마다 에너지저장장치(ESS)를 붙이는 이유다.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에 실린 연구는 베이징·상하이·광저우의 충전 기록 76만건을 분석해 도심 초고속 충전이 전력망 안정성에 부담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배터리도 대가를 치른다. 짧은 시간에 많은 전력을 넣으면 발열과 열화 부담이 커진다. 중국 정부는 지난 7월1일 새 배터리 안전 국가표준을 시행해 급속충전 300회 뒤 단락 시험에서 불이 붙거나 터지지 않아야 한다는 기준을 넣었다. 업체들은 기술로 반박한다. 지리는 배터리 내부 온도 변화를 30초 앞서 예측해 출력을 조절한다고 밝혔다. BYD는 350회 급속충전 뒤에도 배터리 용량 98.7%를 유지했다는 시험 결과를 내놨다. 다만 모두 업체 자체 시험이다.
‘한계’ 발언은 경쟁의 무게중심이 옮겨간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장 임원은 앞으로 충전 생태계가 여러 브랜드가 섞인 주유소처럼 바뀔 것이라고 내다봤다. 속도 기록보다 누가 충전망을 더 넓고 촘촘하게 까느냐가 승부처라는 얘기다. 이마저도 쉽지 않다. BYD가 연말 2만곳 목표를 채우려면 하루 평균 80곳가량을 새로 깔아야 한다.
지난 7월 중국 상하이에서 개최된 WAIC 컨퍼런스에서 비야디(BYD)의 플래시 충전 스테이션이 전시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한국은 어떨까. 국내 대표 초급속 충전 기준은 여전히 ‘18분’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의 800V 기반 E-GMP 전기차인 아이오닉5와 EV6는 350㎾급 충전기에서 10%에서 80%까지 약 18분이 걸린다. 2021년 초고속 충전소 ‘이피트’를 열 때 내건 수치다. SK온이 3월 10%에서 80%까지 7분 충전 기술을 공개했지만 양산차 적용 시점은 미정이다. 그사이 BYD코리아는 사업목적에 ‘전기자동차 충전 사업’과 ESS 설치·운영을 추가했다. 다만 회사 측은 국내 도입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충전 속도 경쟁은 이제 배터리와 충전기, ESS, 전력망을 함께 묶은 생태계 싸움이다. 중국 업체들은 이미 충전망과 전력망 관리 경쟁으로 넘어가고 있다. 한국은 ‘18분’이라는 기존 성과를 넘어 초고속 충전을 양산차에 얹고 이를 감당할 충전망·전력망까지 갖출 수 있느냐는 숙제를 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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