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식민지 조선에 살던 일본인의 집합심성은"…대전 뾰족집을 가다

대전 근현대 건축유산 개방 행사…철거 후 이전 복원됐지만 원형 훼손돼
일본에서 파견된 철도국장이 지어…일본 엔카 '대전행진곡' 초연 행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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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박주영]
(대전=연합뉴스) 박주영 기자 = "뾰족집은 식민지 조선에 살았던 재조일본인의 망탈리테(집단적 심성)를 엿볼 수 있는 공간입니다."
고윤수 대전시 학예연구관은 지난달 30일 중구 대흥동 근대건축유산 '뾰족집'에서 뾰족집의 가치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이날 20여명의 시민이 참여한 가운데 평소 출입이 제한됐던 근현대 건축유산을 일시적으로 개방하는 '대전 헤리티지 오픈하우스' 프로그램의 하나로 뾰족집 공개 행사가 열렸다.
일제강점기인 1929년 지어진 뾰족집은 대전 철도국장이 거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건축면적 92㎡, 지상 2층 규모의 목조 건물 안에 6칸의 방이 있고, 거실은 원형으로 돌출된 벽 모양에 원뿔형 지붕을 올린 서양식 선룸(sunroom·일광욕을 하기 위해 벽을 유리로 만든 방)을 갖추고 있다.
내부는 일본식 다다미방을 비롯해 기둥을 중심으로 바닥을 높여 만든 '도꼬 노마'(상석), '오시이레'(수납공간) 등 전형적인 일본식 주택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서도 지붕은 맞배 형식으로 가파르게 올린 뾰족한 모양으로, 일본식과 서양식 근대 건축 양식을 절충한 독특한 형태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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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박주영]
2000년대 대흥동 일대 구옥 가운데 가장 높아 주민들이 뾰족집이라고 통용해 썼는데, 2008년 대전시 가지정 문화재로 등록될 때는 '일양절충식 가옥'으로 명명됐다.
지금의 뾰족집은 원형 그대로 보존된 모습은 아니다.
2010년 인근에 아파트 단지가 개발되면서 대흥1지구 재개발조합이 뾰족집을 매입해 철거를 시도하자, 시는 훼손을 막기 위해 행정당국에서 보존 조치를 강제할 수 있는 지정문화재로 변경했다.
시는 재개발조합과 협의를 거쳐 실측 조사를 통해 뾰족집을 이전 복원할 계획이었지만, 조합에서 그 전에 기습 철거를 강행하면서 무단 훼손되는 아픔을 겪었다.
뒤늦게 공사중단 조처를 내렸지만, 이미 해체돼 골조만 앙상하게 남은 상황이었다.
시는 뾰족집 건물 형태와 기록, 설계도면 등을 바탕으로 지금의 대흥동 37-5번지에 이전 복원을 완료했지만, 원래의 모습과는 많이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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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문화연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고 학예관은 "남향이었던 집의 위치가 바뀌면서 서향이 됐고, 일본식 정원은 사라졌으며, 건물만 억지로 끼워 넣듯 복원됐다"며 "유례가 없는, 대전시 문화 행정사의 '흑역사'로 남았다"고 씁쓸함을 토로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풍파를 겪은 뾰족집의 사연이 한 일본인 저널리스트에 의해 알려지면서, 뾰족집에 살던 집주인의 정체가 밝혀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10여년 전 해당 저널리스트가 올린 SNS 게시물을 본 한 여성이 자신의 고조할머니 키에코가 살았던 집 같다며 연락했고, 마침내 뾰족집 정초석(머릿돌)에 쓰인 건축주 이름이 이 여성의 조상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당시 일본에서 파견됐던 철도국장 '와타나베 이와지'가 어머니, 아내, 딸들과 함께 살기 위해 지은 집으로, 와타나베 가족이 집을 배경으로 찍은 당시 사진에는 뾰족집의 완전한 전경이 살아있을 뿐만 아니라, 철거 작업 전까지 남아있었던 정원 기암석도 볼 수 있다.
이와지의 딸인 키에코가 대전여중을 다니던 시절 한복을 입고 포즈를 취한 사진도 있다.
와타나베 가족은 8·15 해방 몇 년 전 한국인에게 집을 팔고 일본으로 돌아갔는데, 쇼와 천황이 사망한 날인 1989년 1월 7일에 쓴 키에코의 일기를 보면 "전쟁에서 패한 덕분에 일본은 (오히려) 자유와 평화를 얻었다. 전쟁을 벌인 남자들은 어리석다. (조선의) 그 집은 어떻게 됐을까" 등 전쟁에 대한 감상과 함께 다시는 돌아갈 수 없게 된 뾰족집을 그리워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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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박주영]
이 집에서 '대전행진곡'이 초연됐다는 사실은 그동안 밝혀지지 않았던 부분이다.
일본 대중음악인 엔카의 시초인 '카츄샤의 노래' 등을 만든 유명한 작곡가 나카야마 신페이가 자신이 만든 엔카인 대전행진곡 공연을 위해 대전을 찾았는데, 피아노가 없어 수소문하다가 지역에서 유일하게 업라이트 피아노를 갖춘 뾰족집에서 첫 발표회를 했다고 한다.
어린 나이에 폐병을 앓다 숨진 딸 야스코를 기리기 위해 와타나베 가문에서 만든 문집 '헤이안'(평안)에 이 같은 내용이 담겨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윤수 학예관은 "왜 우리가 일본인이 남긴 집을 세금을 들여 관리해야 하나, 일제강점기 유산에 대해 세금을 쓰는 게 맞나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다"며 "논쟁적인 부분이 있기는 하나, 여전히 한국을 그리워하며 동창회 등을 통해 연을 이어오고 있는 재조일본인들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라고 전했다.
뾰족집 벽 한편에는 '집을 허물지 않아 줘서 고맙다'며 키에코의 고손녀가 선물한 해바라기 그림이 걸려있다.
이날 오픈하우스 행사에 참여한 최은경(60) 씨는 "예전에 대흥동 살 때 왔다 갔다 하면서 뾰족집 안의 모습이 너무 궁금했었는데, 철거됐다고 했을 때 매우 속상했었다"며 "이번에 내부를 볼 수 있게 돼 한을 풀었다"며 남다른 감회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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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박주영]
jyoung@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6년10월01일 08시44분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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