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파마의 ‘수천억 신약 잭팟’ 비밀…“‘퍼스트’보다 ‘환자 삶 증진’” [건강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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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연구실에서 수많은 신약 후보 물질이 쏟아진다. 그렇지만 효능부터 시장성까지 모두 입증해 실제 ‘약’으로 탄생하는 것은 극소수다. 천문학적인 비용과 시간이 드는 이 험난한 과정에서 글로벌 제약사들은 어떤 기준으로 투자 대상을 고를까. 그 해답을 쥔 이들이 바로 전세계를 누비며 미래 신약을 발굴하는 ‘탐색 및 평가’(S&E, Search & Evaluation) 전문가, 이른바 ‘신약 스카우터’다. 최근 유망한 외부 기술을 찾아 공동 연구나 기술이전, 인수합병으로 연결하는 ‘오픈 이노베이션’이 핵심 연구개발(R&D) 전략으로 자리 잡으면서 ‘S&E’ 전문가의 역할도 더 중요해지는 추세다.
지난 15일 ‘2026 애브비 코리아 파트너링 데이’를 앞두고 방한한 아르피타 마이티 애브비 S&E 부사장을 서울 삼성동 한국애브비 본사에서 만났다. 애브비는 한때 연간 매출 200억달러를 넘어선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휴미라’(성분명 아달리무맙)를 비롯해 ‘스카이리치’ ‘린버크’ 등을 보유한 글로벌 제약사다. 면역학 박사인 마이티 부사장은 20년 넘게 신약 연구와 R&D 제휴, 외부 혁신 발굴 분야에서 경력을 쌓아왔다. 현재 애브비에서 면역학·스페셜티·안과·플랫폼 기술 분야의 외부 혁신 발굴을 총괄하고 있다.
연간 3천 건 검토, 10%만 구체적 논의…여러 분야 전문가가 함께 평가
애브비 S&E가 해마다 전세계에서 검토하는 협력 기회는 3천 건이 넘는다. 초기 연구와 플랫폼 기술부터 임상시험 단계의 신약 후보, 이미 상업화한 제품까지 범위도 넓다. 하지만 이 가운데 비밀유지계약(CDA)을 맺고 구체적인 논의에 들어가는 비율은 약 10%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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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티 부사장은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하는 핵심 기준으로 ‘과학적 타당성’을 꼽았다. 특정 단백질이나 생물학적 경로를 조절했을 때 왜 질병이 좋아질 수 있는지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실제 의약품으로 개발해 안정적으로 대량생산할 수 있는지, 충분한 지식재산권(IP)을 확보하고 있는지도 살핀다.
평가 과정에는 여러 분야 전문가가 함께 참여한다. 작은 프로젝트에도 10~15명가량이 참여하고, 대규모 인수합병의 경우 검토 인원이 수백 명에 이르기도 한다. 과학자뿐 아니라 임상개발, 사업개발 및 인수(BD&A), 재무, 법무 등 다양한 분야 전문가가 참여한다. 후보물질의 과학적 가능성과 제조 가능성, 시장성은 물론 앞으로 필요한 연구개발비도 따진다. 향후 이 기술이 만들어낼 것으로 예상하는 수익을 현재 가치로 환산한 ‘순현재가치’(NPV)도 평가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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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보다 중요한 ‘최선’…인비보 CAR-T 등 새로운 기술 주목
마이티 부사장은 신약 후보들을 평가할 때 ‘세계 최초’라는 수식어에 지나치게 얽매일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반드시 새로운 작용 원리를 처음 적용한 ‘퍼스트 인 클래스’일 필요는 없다. 같은 원리라도 효과와 안전성, 투약 편의성을 개선해 환자에게 더 나은 치료 가치를 제공하는 ‘베스트 인 클래스’가 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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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애브비의 간판 의약품인 휴미라와 스카이리치 역시 계열 내 최초의 약은 아니었지만, 차별화된 치료 가치를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주요 치료제로 자리 잡았다.
최근 애브비가 주목하는 기술 가운데 하나는 ‘인비보(in vivo) 카티(CAR-T)’다. CAR-T는 우리 몸의 면역세포인 T세포가 암세포 등을 찾아 공격하도록 유전적으로 바꾸는 치료법이다. 기존에는 환자의 T세포를 몸 밖으로 꺼내 유전자를 조작한 뒤 다시 환자에게 넣어야 했다. 인비보 CAR-T는 필요한 유전정보를 체내 T세포에 직접 전달해 환자의 몸 안에서 CAR-T 세포가 만들어지도록 하는 방식이다.
아직 해결해야 할 기술적·임상적 과제가 있지만 성공적으로 개발된다면 복잡한 세포 채취와 제조 과정을 줄일 수 있다. 루푸스와 류머티즘 관절염 등 비정상적인 면역반응이 문제가 되는 자가면역질환으로 적용 범위를 넓힐 가능성도 있다.
신약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도 검사 수치를 넘어 환자의 ‘삶의 질’로 확대되고 있다. 마이티 부사장은 만성 염증성 장질환인 크론병을 예로 들며 “의사에게는 내시경 검사에서 장 점막이 치유됐는지, 염증이 줄었는지가 중요한 치료 지표지만 환자에게는 통증이 줄었는지, 수시로 화장실을 찾아야 하는 불편에서 벗어났는지, 다시 가족과 여행할 수 있게 됐는지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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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약 편의성도 치료의 중요한 가치다. 하루 두 번 먹던 약을 하루 한 번으로 줄이거나, 자주 맞아야 하는 주사의 투여 간격을 수개월로 늘릴 수 있다면 환자의 일상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냉장 보관의 부담을 줄이거나 투여하기 편한 형태로 약을 개선하는 것 역시 치료의 가치를 높일 수 있다.
현재 애브비는 면역학 외에도 종양학, 신경과학, 안과, 비만·대사질환 전반에서 오픈 이노베이션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최근 주목받는 비만 분야에서는 체지방은 얼마나 줄었는지, 근육을 비롯한 제지방(체중에서 체지방을 뺀 모든 신체 구성 성분)은 얼마나 보존했는지, 에너지 소비에는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등 ‘체중 감량의 질’도 함께 살핀다. 신경과학 분야에서는 알츠하이머병과 파킨슨병 같은 퇴행성 뇌질환부터 편두통과 만성 통증까지 폭넓게 탐색하고 있다.
“한국의 좋은 과학, 개발 초기부터 글로벌 시장 바라봐야”
한국 바이오 생태계에 대한 마이티 부사장의 평가는 긍정적이었다. 우수한 연구 인력과 연구 역량, 수준 높은 병원과 임상 인프라, 대학·연구기관·산업계가 연결된 생태계를 한국의 강점으로 꼽았다. 이러한 잠재력을 글로벌 성과로 이어가기 위해서는 신약 개발 초기부터 세계 시장을 염두에 둔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국내에서 임상 3상까지 모두 마친 뒤 국외 시장에 나가려다 미국·유럽 규제기관의 추가 브리징 연구(국가 간 임상 적용 여부 확인) 요구에 직면하면 임상 상당 부분을 다시 해야 할 수 있다”며, 개발 초기부터 주요 국가의 규제 기준을 반영한 글로벌 전략 수립을 촉구했다. 기업의 임상 역량이 부족하다면 비임상이나 임상 1상 이전부터 발 빠르게 글로벌 파트너를 찾을 것도 덧붙였다.
정부의 역할에 대해서는 연구개발 자금 지원과 함께 경험과 전문성을 연결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돈이 있다고 해서 후보물질을 임상 1상까지 가져가는 방법을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다.”
신약 후보를 사람에게 처음 투여하는 임상시험 단계까지 가져가려면 여러 전문적인 판단이 필요하다. 비임상 독성시험에 어떤 동물을 사용할지, 약을 얼마나 오래 투여할지 결정해야 한다. 규제기관에 임상시험계획(IND)을 신청하기 위한 자료도 준비해야 한다. 일정한 품질의 의약품을 생산하기 위한 제조·품질관리(CMC) 체계도 갖춰야 한다. 초기 바이오기업이 이런 경험과 전문성을 처음부터 모두 확보하기는 쉽지 않다.
마이티 부사장은 “정부는 재정 지원을 넘어 초기 기업이 이용할 수 있는 공동 연구공간과 시설을 마련하고, 글로벌 제약사의 독성·임상·규제·제조 전문가와 연결될 수 있는 네트워크를 만드는 역할도 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마이티 부사장은 인터뷰 말미에 파트너십을 만드는 또 하나의 중요 조건으로 ‘지속적인 소통과 신뢰’를 꼽았다.
“좋은 과학은 기본이다. 하지만 대규모 기술 이전이나 인수합병은 한 번의 만남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이번 ‘애브비 코리아 파트너링 데이’ 같은 만남을 시작으로 바이오 인터내셔널 컨벤션이나 제이피(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 같은 글로벌 무대에서 다시 만나 데이터를 확인하고, 기술이 어떻게 발전하는지 지켜보며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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