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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September 5, 2026

벌열·서리 결탁해 만든 조선의 ‘부패 사슬’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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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명 사칭한 별감, 인사 서리에 돈 뜯어

관료들의 뇌물, 백성 피땀 쥐어짠 돈

집권세력 바뀌어도 오랜 관행 그대로

한겨레가 챗지피티에 “조선 시대 이조와 병조의 서리가 뇌물을 받아 챙기는 관변의 문화가 있었다. 관료들이 뇌물을 바치는 장면과 관료들이 백성들에게 높은 세금을 징수하는 장면을 함께 그려줘”라는 지시어를 입력해 생성한 이미지.
한겨레가 챗지피티에 “조선 시대 이조와 병조의 서리가 뇌물을 받아 챙기는 관변의 문화가 있었다. 관료들이 뇌물을 바치는 장면과 관료들이 백성들에게 높은 세금을 징수하는 장면을 함께 그려줘”라는 지시어를 입력해 생성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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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관의 고금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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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5년 7월1일 병조의 서리 안경민을 찾아온 사람이 있었다. 액정서(掖庭署) 별감(別監) 이경욱이었다. 이경욱은 왕(순조)의 말을 전하러 왔다고 하였다. 액정서는 조선 시대에 내시부에 속하여 왕명의 전달 및 안내, 궁궐 관리 따위를 맡아보던 관아다. 이곳 별감은 쉽게 말해 왕의 주변에 있으면서 잡다한 심부름을 하는 자이다. 예컨대 왕이 존중하는 의미를 담아 신하를 특별히 부르거나 병든 신하에게 약을 보내줄 때면 별감을 보내는 것이 관례였다.

안경민이 이경욱이 전한 왕의 말을 들어보니, 근래 도목정사(都目政事)에서 인사 담당 서리가 정채(情債, 뇌물)를 너무 많이 받는다면서, 이번에 안경민이 받아먹은 액수를 알아 오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도목정사는 관료들의 인사이동에 관한 행정사무를 말한다. 이경욱은 그 사무를 담당하는 병조의 서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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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들짝 놀란 안경민이 받아먹은 정채가 1530냥이라고 종이에 조목조목 써서 바치니, 이경욱은 그 종이를 가지고 갔다가 몇시간 뒤 나타나 다시 왕의 말씀을 전했다. 이번에는 용서할 테니 앞으로는 조금만 받아먹고, 우선 1530냥 중에서 절반을 바치라는 것이었다. 왕이 일개 서리에게 받아먹은 뇌물의 절반을 바치라고 명한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지만, 안경민은 별감 앞에서 그런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765냥을 건네고 영수증을 받았다. 사건이 알려지자 당연히 처벌이 따랐다. 받아먹은 뇌물을 뜯긴 멍청한 안경민은 귀양을 갔다. 이경욱은 효시를 당했고, 그의 잘린 목은 장대 끝에 며칠간 달려 있었다.

별감이 서리에게 돈을 뜯은 것은 분명 예외적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서리에게 돈을 뜯겠다는 발상은 당시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관료 사회의 문화에 근거한 것이었다. 병조는 모든 무관의 인사이동을 담당한다. 이 과정에서 뇌물 수수는 관행이었다. 첨사(僉使), 만호(萬戶), 권관(權管) 같은 지방 무관직은 임지로 떠나기 전에 반드시 안경민 같은 인사 담당 서리에게 돈을 주어야만 하였다. 관례화된 뇌물 수수가 병조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조는 문관의 인사이동을 담당했다. 조선은 문관의 나라가 아니었던가. 인사 과정에서의 뇌물은 이조가 훨씬 더 많았다. 지방관으로 임명되는 사람은 당참채(堂參債)라고 불리는 돈을 이조 서리에게 주어야만 하였다. 만약 주지 않으면 해당 지방관이 부임한 곳으로 찾아가 받아 왔다. 인사이동은 1년에 두차례 있었고 지방 수령은 330명 정도였다. 이들이 바치는 돈이 이조 서리의 수중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이조와 병조의 서리가 뇌물을 받아 챙기는 관변(官邊)의 문화가 이경욱이 안경민을 찾아가 돈을 뜯게 된 근거다. 그렇다면 안경민 쪽, 그러니까 별감 쪽은 깨끗했던가. 그럴 리 없다. 그가 속했던 액정서에는 40명 남짓한 별감이 있었다. 이들 역시 인사이동이 있으면 새로 임명된 관료들로부터 뇌물을 뜯어냈다. 주지 않으면 집까지 찾아가서 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 신임 관료는 이들에게 돈을 준 증거로 ‘고풍’(古風)이란 문서를 남기기도 하였다. 왕과 조정은 이따금 이들을 처벌했지만 그때뿐이었다.

이조와 병조의 서리, 액정서의 별감이 뜯어낸 돈은 관료 개인의 주머니에서 나온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자기 돈을 인사 담당 서리에게 순순히 바치는, 그런 멍청한 벼슬아치는 없었다. 부임한 뒤 그는 뜯긴 돈을 자신이 맡은 지방에서 다시 뜯어냈다. 자신의 몫도 포함해서 말이다. 이경욱은 안경민을 협박할 때 왕의 말이라면서 ‘뇌물을 받는 일을 그치지 않는다면 백성들이 피해를 볼 것’이라고 말했는데, 이것은 안경민이 받은 뇌물이 원래 백성으로부터 나온 돈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곧 중앙의 관료조직에서 오가는 뇌물은 백성의 피와 땀을 쥐어짠 것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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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조와 병조의 서리, 액정서의 별감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관서의 서리는 부정적 방법으로 수입을 올렸다. 관례화된 뇌물 수수와 부정의 구조는 조선조 말까지 변함없이 유지되었다. 도저히 덮고 넘어갈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경우라 하더라도 개별적으로 처벌했을 뿐이고 구조는 건드리지 않았다. 왜냐? 중앙 관서의 모든 서리는 권력을 쥐고 있는 벌열(閥閱) 가문의 겸인(傔人), 곧 청지기였기 때문이었다. 쉽게 말해 정승·판서와 같은 고위관료의 가내 비서가 중앙 관서의 서리가 되었던 것이다. 어떤 공식적 선발 과정도 없었다. 이들 벌열 가문과 서리(=겸인)가 이익을 공유하는 한 집단이었던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왕이 똑똑해도 멍청해도, 늙은 왕이 죽고 새 왕이 즉위해도, 벌열과 서리가 결합한 단단한 구조는 바뀌지 않았다. 피비린내 나는 정쟁을 거쳐 서인이 집권하건, 남인이 집권하건, 서인이 쪼개져 노론과 소론이 되어 오만 가지 거룩한 명분을 내세우며 상대를 제거하고 권력을 잡아도 이 구조만은 변함이 없었다. 도리어 권력을 잡고 나면 자신의 겸인을 주요 관서의 서리로 넣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사정이 이러니 어느 누가 나서서 벌열과 서리가 결합으로 만들어진 부패의 구조를 개혁하자고 나서겠는가?

개혁을 주창한 실학자로 알려져 있는, 박지원과 홍대용, 서유구와 김정희 등은 이따금 현실 문제를 거론하면서 이런저런 것을 개혁하자고 말을 했지만, 이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 말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도 벌열의 일원이었기 때문이었다. 옛 책을 읽다가 백성의 복리(福利)를 위해 어떤 개혁이 있어야만 했는지 생각해 본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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