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을 ‘엿 먹인’ 언론…8년 전쟁끝에 사주는 무릎 꿇었다 [Book]

신간 ‘정치는 어떻게 뉴스를 위협하는가’
트럼프 vs 워싱턴포스트 8년의 기록
저널리즘 성취불구 언론은 생존위기
트럼프 2기 이후 ‘전리품’으로 전락
‘비밀 만찬’을 위해 네 사람이 백악관 경내에 진입한 시간은 오후 6시 50분. 대통령과 영부인이 그들을 정중하게 맞았고, 대통령의 사위도 동석했다.
그리고 7시, 느닷없이 특종 하나가 보도된다. 특별검사가, 대통령 사위와 러시아 사이의 사업 거래를 조사 중이란 내용이었다. 공교롭게도 특종을 보도한 신문의 경영진과 편집 책임자들이 대통령 면전에 앉아 있었다. 보도의 쌍방 당사자들이 한 테이블에 마주 앉은 것.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그때, 누군가 어색한 침묵을 깼다. “대단히 셰익스피어풍이군요, 적과의 만찬이라니.”
믿기 어렵지만 2017년 6월 15일 벌어진 실화다.
워싱턴포스트 사주(社主) 제프 베이조스. 발행인 프레드 라이언, 논설실장 프레드 하이엇, 뉴스 보도 총괄 편집국장 마틴 배런이었다. 이 보도로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의 적’을 넘어서서 ‘국가의 적’으로 간주됐고, 이후 아마존과 워싱턴포스트에는 ‘대통령의 강펀치’가 날아들었다. 그 지독한 과정을 기록한 마틴 배런의 신간 ‘정치는 어떻게 뉴스를 위협하는가’가 번역 출간됐다.
참고로 배런은 보스턴글로브 편집국장(2001~2012년), 워싱턴포스트 편집국장(2013~2021년)을 지낸 인물로 영화 ‘스포트라이트’에서 리에브 슈라이버가 연기한 편집국장의 실제 모델이며, 2023년 이 책을 썼다.
책은 워싱턴포스트 인수 시점으로 돌아간다.
새 편집국장으로 취임한 배런은 아마존 창립자 베이조스가 그레이엄 가문이 80년간 소유했던 워싱턴포스트 경영권을 2억5000만달러에 사들인다는 소식을 듣는다. “워싱턴포스트는 곤경에 처했다. 오프라인과 온라인 광고 모두 줄고 있고, 유료 디지털 구독자는 희망사항일 뿐이다”란 매각 사유가 비수처럼 날아들었다. 베이조스는 ‘영어권 전체’를 회사의 시장으로 인식했고, 진심을 다했다. 그러나 위협은 위축된 언론 시장과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이 아니었다. 그에 대한 위협은 ‘앙심을 품은 자국 대통령’ 자체였다.
사실 트럼프의 대선 출마 가능성은 작아 보였다. 워싱턴포스트와 ABC의 공동 여론조사에서 공화당 등록 유권자의 4%만이 그를 지지했다. 하지만 배런의 예감은 달랐다. “무역 거래에서 미국은 동네북”이라고 트펌프가 말하자 행사장은 열광의 도가니로 변했고, 그 모습에서 기존 기득권 세력에 대한 유권자의 분노가 얼마나 높은지가 보였다. 절대로, 전혀 가능성이 없다고 봤던 트럼프의 출마는 사실이 됐다. 트럼프는 워싱턴포스트의 주요 취재 대상이 된다.
워싱턴포스트가 연일 트럼프를 ‘때리자’, 관계는 악화된다. 저자가 보기에 트럼프는 ‘역사적인 허위의 길’을 가고 있었다. 이쯤 되자 트럼프의 표적이 정해진다. 그의 표적은 베이조스였다. 아예 대통령이 되면 아마존을 ‘처벌’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말했다. “난 누가 나를 엿 먹이면 더 심하게 갚아주는 걸 좋아한다. 15배로 돌려줘야 한다”는 그의 심리가 반영된 말이었다.
그러나 베이조스는 굴복하지 않았다고 책은 전한다. 여섯 차례 파산하고도 자신을 미다스의 손으로 자화자찬하는 대선후보, 자신이 소유한 건물의 층수도 크게 차이 나는 숫자로 잘못 말하는 모습에 워싱턴포스트는 물러서지 않았다. 트럼프에게 베이조스, 아마존, 워싱턴포스트는 ‘악의 축’이었지만 사주 베이조스는 “우리는 그들과 전쟁을 벌이는 게 아니다. 그들은 우리와 전쟁 중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할 일만 하면 된다. 그냥 할 일을 하라”고 구성원을 독려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워싱턴포스트는 배런 재임 기간 무려 ‘퓰리처상 10개’를 받아냈다. 그들은 트럼프가 만들어낸 진실과 허구의 흐린 경계를 집요하게 파고들었고, 마치 댐을 터뜨리듯 특종 보도를 쏟아냈다.
그러나 이 책은 자신이 재직했던 회사와 사주를 향한 예찬의 모습과는 꽤 거리가 멀다. 책 안팎에서 분위기는 다시 무거워진다. 한때 뉴욕타임스 월간 방문자 수를 제쳤던 워싱턴포스트는 야심 차게 시작했던 디지털 전환에도 수익 모델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다. ‘독자들이 기꺼이 지갑을 열 정도로 시각적으로 매력적인 앱을 만들어야 한다’ ‘종이신문에서 최고로 꼽는 특징을 앱으로 구현해야 한다’ ‘앱에서 워싱턴포스트란 이름을 떼야 한다’ ‘웹사이트의 모든 것을 테스트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등의 주장이 난무했던 기록도 상세하다. 저널리즘의 성취가 ‘언론사의 생존’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못하는 모습이 엄연한 현실이었으므로 이 고민은 ‘날것’이다.
배런은 편집국장 8년 재임 후 2021년 워싱턴포스트를 떠난다. 그리고 트럼프 행정부 2기가 들어서자 저자가 보기에 베이조스는 눈에 띄게 달라져 있었다. 트럼프 취임식에 100만달러를 기부했고, 아마존은 영부인 다큐멘터리 제작에 4000만달러를 투자했다. 배런은 “대통령의 전리품이 됐다”고 비판한다. 그는 이 책의 한국어판 서문에 자신의 심정을 포탄을 퍼붓듯 쏟아낸다.
‘트럼프 대 워싱턴포스트’를 그린 회고록이자 ‘퓰리처상을 10개 받아도 정작 생존을 고민하는 미디어의 존재 이유’를 성찰하는 책. 저널리즘의 위기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밑줄을 아니 그을 수 없다.
마틴 배런 지음, 전미영 옮김, 위즈덤하우스 펴냄
아마존
AMZN
Amazon.com, Inc. NASDAQ
아마존 창립자의 과거 워싱턴포스트 인수와 언론사 경영 과정이 회고록을 통해 재조명됐습니다.
신문사 디지털 전환의 난항과 트럼프 행정부 시기의 정치적 갈등 기록이 포함됐습니다.
취임식 기부와 미디어 투자 행보를 두고 독립성과 기업 관계를 향한 다양한 시선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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