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 형소법 한달]‘검사가 손 댄’ 증거는 재판에서 못 쓴다?···뺑뺑이 도는 피해자, 꼬여가는 형사재판
서울 서초구 법원종합청사. 한수빈 기자
형사재판의 공소유지를 담당하는 A검사는 지난달 재판부가 요구한 자료를 법정에서 제출하려다 제지를 받았다. 앞서 재판부는 세금계산서합계표 일부가 빠졌다며 “다음 기일까지 내달라”고 했다. 그러나 검사가 국세청을 통해 확보한 자료를 직접 내려 하자 재판부는 “검사가 직접 낼 수는 없으니 사실조회나 문서제출명령을 신청하라”고 했다.
안미현 대전공소청 천안지청 부부장검사가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소개한 사례다. 안 검사는 형소법 개정 이후 재판 절차가 불필요하게 지연되는 일들이 잇따르고 있다면서 “검사 묻으면 안 된다고, 공소 유지에 필요한 경우도 검사가 직접 받아 제출하면 증거능력이 없다고 의원 나리들께서 바꿔놨기 때문”이라고 썼다.
지난달 2일 개정 형사소송법 시행 후 한달 사이 일선에서는 ‘검사가 공소유지 과정에서 확보한 자료는 어디까지 증거능력이 인정되는지’를 두고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문제가 되는 조항은 형사소송법 제245조의13이다. 제1항은 수사권이 사라진 검사에게 ‘사실관계 확인권’을 부여했다. 공소유지에 필요한 경우 피해자나 피의자의 의견을 듣고 자료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제3항은 ‘검사가 제출받은 자료는 재판의 증거로 쓸 수 없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에 A검사 사례처럼 법원이 ‘검사의 손을 거친 증거는 법원을 통해 다시 제출해야 증거능력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별도 절차를 밟도록 하는 것이다.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공소청 입구. 김정근 기자
성폭력·사기 등 범죄 피해자들에게도 불똥이 튀고 있다. 이전에는 피해자가 공판검사에게 새로운 자료를 내면 검사가 법원에 증거신청을 할 수 있었지만, 최근에는 ‘피해자가 자발적으로 가져온 자료라도 검사를 거치면 재판 과정에서 증거능력을 트집잡힐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에 피해자들이 공소청에 추가 자료를 내려 하면 ‘여기에 내지 말고 경찰로 가보라’고 안내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막상 경찰도 ‘이미 송치한 사건이라 증거를 받지 않겠다’는 등 이유로 거부해 피해자가 경찰과 공소청 사이에서 ‘뺑뺑이’를 도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검사의 보완수사권 폐지에 반대해 온 김예원 변호사는 “결국 피해자는 이미 수사를 끝낸 경찰에 다시 증거를 보내거나, 판사에게 제출명령을 부탁하거나, 아니면 증거능력에 관한 법적 논란을 감수하고 검사에게 직접 내야 한다”며 “어느 쪽이든 피해자가 가진 증거를 재판에 제출하는 일이 불필요하게 복잡해진다”고 말했다. 오지원 변호사는 “(모호한 법 조항 때문에) 수사기관도 난감하겠지만, 결국 피해자들만 중간에 껴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상황이 돼버린 것”이라고 했다.
이를 두고 법관들도 견해가 갈린다. 수도권 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동료 법관들 사이에서 “검사가 (사건 관계인에게) 자료를 받아서 제출하는 순간 이미 수사를 한 것”이라는 의견과 “증거 몇 개 받아서 제출만 하는 건 공소유지의 일환으로 봐야 하지 않겠냐”는 의견으로 나뉜다고 전했다.
김 변호사는 “변호인이 사건마다 증거능력을 다퉈야 하고, 재판부마다 판단이 달라질 가능성도 있어 해석론으로는 불확실성을 완전히 없앨 수 없다”며 “형소법 제245조의13 제3항만이라도 원포인트로 개정하는 게 이 혼란을 끝낼 사실상 유일한 방법”이라고 했다.
일선 공소청에서 일하는 한 검사는 “보완수사권 폐지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무시하고 결정했기 때문에 감내할 수밖에 없는 일”이라며 “수사권을 없애는 게 (법 개정의) 핵심이었다면, 최소한 공소제기 이후에는 ‘검사가 증거를 제출받을 수 있다’고 명시하는 등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KioskNews shows a cleaned-up reading view extracted from the publisher’s page — the original always lives on their site, not ou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