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뒤에도 끝내 놓지 못한 건…채워지지 않는 ‘내 마음’ [건강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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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플 갈등이 하나의 대중 콘텐츠가 된 시대다. 외도와 중독, 폭언과 통제, 이혼을 둘러싼 첨예한 갈등까지 관계의 가장 사적인 장면들이 방송과 온라인에 등장한다. 시청자는 그 관계를 지켜보며 놀라고, 때로는 자문한다. ‘저 정도라면 왜 헤어지지 않는 걸까.’
상담실에서도 지난한 관계를 어렵게 끝내놓고도 마음은 여전히 그 안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을 만난다. 오랜 고민 끝에 별거를 선택한 뒤에도 주변을 통해 상대의 근황을 확인하며 왜 자신에게 사과하지 않는지 답답해하기도 한다. 헤어짐과 재회를 반복하던 연애를 끝내놓고도 상대의 동선에 우연을 가장해 나타나, 자신에게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확인하려 들기도 한다.
이때 흔히 미련이나 사랑을 떠올리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우리가 놓지 못하는 것은 때로 그 ‘상대방’이 아니라, 그 관계에서 ‘끝내 채워지지 않은 마음’일 수 있다. 버려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관계 안에서 안전하다는 감각,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진다는 경험 같은 것들이다. 어린 시절부터 이런 경험이 충분하지 않았다면, 관계 안에서 그 결핍을 채우려는 마음은 더욱 커질 수 있다. 때로는 상대가 끝내 그것을 줄 수 없는 사람임을 받아들이는 일이, 익숙한 관계의 고통보다 더 어려울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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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관계가 쉽게 끝나지 않는 데는 관계 속에서 오래 맡아온 역할의 익숙함도 작용한다. 누군가는 늘 기다리고, 누군가는 문제를 수습하며, 누군가는 상대를 바꾸기 위해 끊임없이 설득하고 확인한다. 어린 시절부터 관계가 언제 흔들릴지 몰라 불안했던 사람에게 이런 방식은 더욱 익숙할 수 있다. 그래서 불안정한 관계를 오래 참고 견디기도 하고, 반대로 불안을 견디지 못해 상대를 계속 확인하고 통제하기도 한다. 겉으로는 정반대지만, 둘 다 오래된 관계 불안과 결핍에서 비롯된 반응일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익숙한 관계가 반드시 편안하거나 건강한 관계를 뜻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때로 사람은 오래 겪어온 불안과 긴장을 오히려 예측 가능한 것으로 느끼기도 한다. 이러한 방식이 굳어지면 관계의 어려움을 키우는 악순환이 만들어질 수 있다.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지금 관계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보기보다 자신의 불안과 결핍을 해소하는 데 더 매달리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상대의 실제 모습과 행동에 반응하기보다 자신의 오래된 상처와 불안에 반응하는 관계가 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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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오래되고 중요했던 관계와의 이별은 단지 더 이상 만나지 않는 것보다 복잡한 일인지 모른다. 관계를 끊었다고 해서 그 안에서 반복해온 기다림과 확인, 상대를 붙잡고 변화시키려 했던 역할까지 저절로 끝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관계의 상실이 나의 회복으로 이어지려면, 상대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만이 아니라 ‘나는 왜 그 관계에 오래 머물렀는지’ ‘무엇을 그토록 받고 싶었는지’ ‘받을 수 없는 것을 왜 끝까지 기다렸는지’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어쩌면 관계를 잘 끝낸다는 것은 그 사람과 헤어지는 것만이 아니라, 그 관계 안에서 오래 반복해온 나의 마음과 역할까지 함께 돌아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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