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정병시대] “만든 사람 위한 정책 같아요”···청년 정책 2000개의 착시 효과
경향신문이 만난 청년 100명 중 정부 정책을 한 번이라도 이용한 청년은 73명이었다. 이들이 이용한 청년 정책은 18개에 그쳤다. 권도현 기자
‘청년’이라는 이름표를 단 정책이 전국에 2000개 가까이 있다. 가짓수는 많은데 청년의 삶에 가닿는 정책은 제한적이다.
경향신문이 만난 청년 100명 중 73명은 한 번 이상 정부 정책을 이용했다고 답했다. 다만 이용한 정책은 47개에 그쳤다. 국가장학금(24명), 청년적금(14명), 청년월세(8명), 국가근로장학금(6명) 등 학비와 자산형성, 주거비를 지원하는 일부 정책을 중심으로 이용도가 높았다. 기초생활 보장제도처럼 청년에 국한한 정책이 아닌 것을 제외하면 실제 이용한 청년 정책은 18개까지 줄어든다. 건설업을 하는 최민석(28·가명)은 “나라에선 항상 좋은 제도를 마련해 놨다고 하는데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고 말했다.
어떤 청년에게 ‘청년 정책’은 없는 것과 다름없다. “몰라서” 혹은 “알고도” 청년 정책을 이용하지 못한 청년도 27명에 달했다. 어릴 때부터 미용사로 일한 최현주(30·가명)는 “어떤 제도가 있는지 잘 모르기도 하고, 소득 요건에 걸리다보니 이용하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현생에 쫓기는 이들은 청년 정책을 뜻대로 이용하기 어렵다. 휴대전화 대리점에서 일하는 이정호(29·가명)는 따로 휴가가 없어 평일에 시간을 내지 못한다. 그는 임대주택에 당첨되고도 은행 등 서류를 준비하지 못해 입주하지 못했다. “반차도 못 내는데 무슨 임대주택인가” 싶었다. 고깃집에서 하루 10시간씩 일했던 오승현(23·가명)은 한 달에 쉬는 날이 4번뿐이었다. “눈 감으면 자고, 일어나면 일하는” 일상이 반복됐다. 청년 대상 프로그램을 찾아보고 지원해볼 여유가 없었다.
복잡하고 까다로운 절차는 곧잘 ‘단념’을 부른다. 수도권에서 자취하는 최영훈(29·가명)은 주거비 부담을 줄이려고 ‘청년주택’을 알아봤지만 준비해야 할 서류가 많은 데다 당첨될 것이란 확신도 없어 사실상 포기 상태다. 심리상담을 알아봤던 취업준비생 박정인(24)은 “무료여서 그런지 과정이 복잡했다. 죽을 정도는 아니라 포기했다”고 했다. 청년 11명이 정부 제도를 이용하는데 절차상 어려움을 느꼈다고 답했다.
청년이 처한 상황에 따라 정책의 결과값도 다르다. 최근 정부는 청년층의 자산 격차 완화를 위해 ‘청년미래적금’ 같은 자산형성 지원책을 늘리고 있다. 일정한 소득이 없는 취업준비생 이채원(24·가명)은 부모의 도움으로 꼬박꼬박 적금을 붓고 있다. 반면 회사의 부도로 실업 상태인 김혜진(34·가명)은 적금에 가입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중간에 끊을 게 뻔해서”다.
정책의 ‘홍수’ 속에도 일부 청년들은 소외감을 토로했다. 대다수 청년 정책이 전제하는 ‘청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느껴서다. 일용직 김정수(27)는 청년 정책이 “4대 보험” 되는 직장인 위주로 설계됐다고 느껴 굳이 찾아보지 않는다. 배달 라이더 김지수는 “공모 사업에 신청하려고 했는데 ‘대학생 중심’이라 못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당사자가 만족하는 청년 정책도 분명 있다. ‘학비·장학금 지원’(12명)과 ‘주거 지원’(9명)처럼 경제적 부담을 덜어준 정책에 도움을 받았다는 답변이 많았다. 반면 공급자 중심의 청년 정책은 정작 청년의 삶과 멀어진다. 올해 청년 정책 시행계획에 포함된 정부의 일자리 사업인 ‘고속도로 휴게소 사회적가치매장 활성화’ 사업은 “도심지와 떨어진 근무지 등 휴게소 매장의 특성으로 창업 지원율이 저조”하다. 청년 귀어인 등에게 주거와 일자리를 종합 지원하는 ‘청년바다마을 조성’ 사업은 지난해 공모 신청에서 미달이 났다. 예시로 든 두 사업 모두 실제 청년의 수요를 우선했다고 보기 어렵다.
“청년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만든 사람을 위한 정책 같아요.”(이주연·34·가명) “(정부가) 지원을 많이 하려곤 하는데 사회가 나아진 것 같지 않아요.”(김은희·30·가명) 청년이 그 효과를 체감하지 못하는 수많은 청년 정책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청년들은 의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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