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정병시대] 테니스장 신축이 청년 정책? 33조 쏟아부어도 실업률 제자리인 이유
2026년 중앙·지자체 청년 정책 시행계획의 1965개 사업을 전수 분석했다. 사실상 전국민 대상이거나 청년 문제 해결과 무관한데도 청년 정책으로 과대 포장된 정책을 ‘무늬만 청년’으로, 예산 일부만 청년 몫으로 정해둔 정책을 ‘청년 할당’으로 분류했다. 나머지 중 청년에게 현금을 지급하는 정책을 ‘현금 지원’으로 분류했다. 지면의 한계로 모든 정책을 다 담진 못했다.
청년정책과, 청년고용기획과, 청년농육성정책팀, 청년주거정책과…
요즘은 조직도에 ‘청년’이 없는 중앙부처를 찾기가 더 힘들다. 지방자치단체도 마찬가지다. 2020년 청년기본법 제정 이래 각급 정부는 청년 문제를 다루는 과·팀을 만들었다. 이 조직들은 국정과제가 된 청년 문제 해결을 위해 청년 정책을 앞다퉈 생산하고 있다.
1965건, 32조9000억원. 올해 정부와 광역지자체가 내놓은 청년 정책의 가짓수와 예산 총액이다. 청년 정책을 총망라한 ‘청년 정책 시행계획’이 2021년 처음 선보인 후 5년 만에 건수는 400건, 액수는 7조원가량 늘었다. 그러나 청년 실업률은 5년 전과 큰 차이가 없고, 20·30대 무주택자 비율은 더 늘었다. 정책 가짓수만 부풀려졌거나 정책 방향이 잘못됐을 가능성이 있다.
경향신문은 1일 중앙정부와 16개 광역지자체가 올해 내놓은 청년 정책 1965건을 전수 분석했다. 청년 정책은 과대 포장된 측면이 있었고, 어떤 문제에 대해서는 근본 대책을 찾기보다 청년 고통을 완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 듯했다.
‘무늬만 청년 정책’이 4건 중 1건에 달했다. 사실상 누구나 이용할 수 있거나, 청년 문제 해결이 주된 목적이 아님에도 청년 정책으로 분류된 것들이다. 예컨대 전 국민이 응시할 수 있는 건축구조기사 국가자격증 신설이나, 새로 임용된 대학 전임교원 등의 연구를 지원하는 신진연구 지원사업이 청년 정책으로 분류됐다.
방향성의 문제도 있다. 청년 문제의 원인이 청년의 역량 부족에 있지 않음에도 ‘교육’ 정책의 가짓수가 두 번째로 많았다. 대학교육 및 연구 지원 정책이 청년 정책으로 포장된 것도 영향을 미쳤다. 근본적인 해법을 고민한 정책보다는 청년이 바로 체감할 수 있는 정책들이 많았다. 정책을 유형별로 세분화했을 때 가장 많은 유형은 ‘현금 지원’ 정책이었다.
‘전지적 정부 시점’의 문제도 있다. 정책에 청년의 수요보다 정부의 필요가 더 많이 반영돼 대상자 모집에 난항을 겪는 사업들도 더러 있었다. 농어업·창업 관련 사업의 숫자가 상대적으로 많았다. 같은 청년이라도 고교 졸업자보다는 대학생이, 결혼하지 않은 청년보다는 결혼한 청년이 더 많은 혜택을 받는 구조였다.
무늬만 청년 정책
충청남도는 ‘2027 하계 유니버시아드 개최’와 관련해 테니스장을 새로 짓고 경기장을 개보수하는 예산 574억원을 모두 청년예산으로 분류했다. 성공적인 대회 개최가 목적이고, 청년 문제와는 큰 관련이 없지만 충남 전체 청년예산의 10% 이상을 차지했다.
올해 청년 정책에서 정책의 숫자를 부풀리는 게 목적이 아닌지 의심스러운 ‘무늬만 청년 정책’은 489건에 달했다. 예산 규모는 2조5000억원. 경향신문은 ①정책의 주된 목적이 청년 문제와 직접 관련이 없거나 ②사실상 전 국민이 참여할 수 있는 사업 ③참여자 나이 기준이 청년(19~34세)보다 대폭 확대된 사업들을 ‘무늬만 청년 정책’으로 분류했다.
이 같은 지적은 정부 내부에서도 되풀이된 지 오래다. 2023년에는 국무총리 주재로 청년 정책을 수립·조정하는 청년정책조정위원회 회의에서 “실제로는 청년만이 수혜 대상이 아닌데 청년 정책으로 라벨링을 한 경우가 많고, 실질적인 청년 체감 정책은 많지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3년 만인 올해 초 같은 회의에서도 “기존 정책과 청년 정책 간 유사·중복사업 유무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 나왔다. 그럼에도 청년 정책은 양적 팽창만 거듭했다.
개별 사업들을 뜯어보면 과연 청년 정책이라 할 수 있는지 의구심이 드는 사례가 다수 발견된다. 나이기준부터 들쭉날쭉하다. 조례에서 청년을 19~45세로 폭넓게 정하고 있는 전남광주는 ‘청년부부 결혼축하금 지원’은 49세 이하까지, ‘학사농어업인 육성 지원사업’은 50세 이하까지 지원한다.
고무줄 같은 나이 기준은 일부 정책이 ‘전지적 정부 시점’으로 설계됐기 때문일 수 있다. 청년의 필요보다는 정부의 필요가 반영된 정책들이 적지 않았다. 특히 청년 농어업인 육성 관련 정책이 그렇다. 전남광주의 ‘친환경농산물 계약재배 청년농가 육성’ 사업은 49세 이하 청년 농가를 우선 사업 대상으로 선정했는데 2024년 모집된 청년 농가는 25.4%에 그쳤다. 강원도의 ‘청년어업인 영어정착 지원’ 사업은 18~39세 청년을 모집했는데, 신청자 부족으로 사업대상을 45세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건의가 나오기도 했다.
근본적인 해법은 어디에
올해 정부와 광역 지방자치단체가 내놓은 청년 정책은 1965건, 32조 9000억원 규모에 달한다. 권도현 기자
나이 기준이 없어도 ‘청년 정책’이라 볼 수 있는 사업들도 있다. 중소기업, 플랫폼·프리랜서 등 일터의 근로환경 개선 사업 등이 대표적이다. 소수의 좋은 일자리와 다수의 그렇지 못한 일자리로 나뉜 한국의 노동시장에서 안 좋은 일자리의 근로환경을 개선하는 것은 청년 문제의 해법일 수 있다. 그러나 관련 사업은 26건, 6300억원 규모에 그쳤다. 사실상 산재예방 사업인 ‘중소기업 일터 안전강화 지원(5400억원)’을 제외하면 사업 대부분이 예산 규모가 작았다. 그나마도 청년을 많이 채용했거나, 청년 친화적인 근무환경을 갖춘 우수기업에 지원금을 주는 방식이 많았다. 일부 정책은 직장에 휴게실을 만들어주거나 커피머신을 비치하는 간접 지원에 그치기도 했다.
일터의 변화는 더욱 구조적인 문제를 다뤄야 한다. 이중화된 노동시장에서 발생하는 격차는 비단 임금만이 아니다. 일하는 시간, 구체적으로는 연차·휴가 등을 눈치 보지 않고 쓸 수 있는지 여부, 조직문화에서의 격차가 더 크다. 경향신문이 청년 100명에게 좋은 직장의 조건을 복수 응답으로 물었을 때 ‘쉬는 날, 퇴근 시간 보장’을 꼽은 이들이 42명으로 가장 많았다. 청년 38명은 ‘존중·인정하는 조직문화’를 꼽았다. ‘높은 급여(20명)’를 꼽은 이들보다 ‘생활이 가능한 적당한 급여(31명)’를 선택한 이들이 더 많았다.
일터를 변화시키는 사업보다는 중소기업이 청년에게 채워주지 못하는 부족분을 정부가 직접 채워주는 사업이 많았다. 최근 농어촌 인력난 대책과 관련해 이재명 대통령이 ‘6개월간 월 500만원 수준의 소득을 보장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것과 유사한 논리로 만들어진 사업들이다. 한시적으로 중소기업에 다니는 청년의 인건비를 지원하거나, 청년이 저축한 돈만큼 정부가 지원하는 사업들이 주를 이뤘다. 단기적으로 청년의 중소기업 취업을 유도할 수 있는 정책들이지만, 일터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상황에서 효과는 제한될 수밖에 없다. 예컨대 제주도는 2018년 한 해 동안 중소기업에 다니는 청년 약 400명을 모집해 향후 5년간 월 25만원씩 지원하는 정책을 폈는데, 5년 만기를 채운 청년은 절반을 밑돌았다. 퇴사 후 해지가 속출한 탓이다.
현금 지원 정책의 비중이 높은 것도 특징이다. 현금 지원 사업은 346건, 10조원 규모(‘무늬만 청년 정책’ 및 청년이 사업대상자 중 일부인 ‘청년 할당’ 사업 제외)로 전체 예산의 3분의 1가량을 차지했다. 이 중 저소득·자립준비·고립은둔·가족돌봄청년 등 사회적 약자를 지원하는 정책은 75건으로, 예산 규모는 8000억원에 그쳤다. 나머지 9조2000억원은 청년이라면 사업대상이 될 수 있었다.
예산 규모로는 국가장학금 등 대학 등록금 지원 사업이 4조6000억원 규모로 가장 많았고, 정책 건수로는 청년내일저축계좌 같은 자산형성형 사업이 45건(3조1000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이 밖에 구직활동비를 지원하거나 1회 면접 때마다 5만원씩 면접수당을 지급하는 사업, 부동산 중개 수수료나 이사비를 지원하는 사업 등이 포함됐다. 당장은 생활비를 아낄 수 있지만, 청년 문제의 처방이라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역진적 혜택
사업대상자별로 나눴을 때, 정부의 지원이 가장 많이 집중된 학력 집단은 대학생이었다. 예산 규모가 큰 국가장학금의 영향도 있지만, 청년 교육 예산의 상당수가 대학에 집중된 것도 하나의 이유다. 대학이라는 인프라가 정책 접근성이 높은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하다못해 금연·마약 예방 등의 사업은 물론 ‘천원의 아침밥 사업’도 대학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대학생 중심 정책은 345건, 8조2000억원에 달했다. 그중에서도 이공계 대학생(약 900억원)은 반도체·AI 인재 양성 사업 등으로 추가 지원을 받았다.
정책 방향이 역진적이라 볼 수 있는 대목도 있다. 고교 재학·졸업생들이 중심이 되는 청년 정책은 31건, 4800억원 규모에 그쳤다. 대학생과 비교하면 격차가 크다. 대학생과 고졸 청년의 인구비는 3대 1(2025년 고교 졸업자 진학 통계)인 데 반해, 투입되는 예산의 비율은 17대 1까지 벌어진 셈이다.
정부는 혼인한 청년들을 위해 정책 31건에 예산 2조9000억원을 배정했다. 각종 주거 지원부터 결혼·출산·육아 수당 및 공공예식장까지 지원하는 지자체가 많았다. 다만 평균 이상 소득을 올리는 청년일수록 결혼과 출산 비율이 높아지는 추세를 고려하면, 이 역시 소득이 높은 청년에게 혜택이 쏠릴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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